〈나는 마라토너〉

채움과 비움 사이

by 서강


매일 가는 화장실.

하지만 정말 급할 때, 눈앞에 없다면?

그건 재앙이다.


먹고사는 문제도,

사랑도,

부와 명예도,

아무 쓸모가 없어진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배 속이 심상치 않았다.

급똥이 급했다.

화장실을 향해 달리는 동안,

0.1초가 1시간처럼 느껴졌다.

그 짧은 거리에서 나는 기도하듯 속삭였다.


‘제발, 문이 열려 있기를.’


다행히 문은 열려 있었고,

위기를 면할 수 있었다.


휴―.

한숨을 돌리는 순간,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사는 데 있어 채움이 중요하듯,

비움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만약 그 일이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벌어졌다면,

그건 작은 해프닝이 아니라,

평생 잊지 못할 참사가 되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빛난다.

비워야 할 곳에서 비우고,

채워야 할 곳에서 채우는 것.

때를 맞추고 자리를 지키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이 삶을 조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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