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사치가 되는 순간〉

당연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by 서강



가끔 이유 없이 맥이 빠져

기운이 한 톨도 남지 않을 때가 있다.

몸이 나를 붙잡아두는 듯, 꼼짝할 수 없는 날.


그럴 때마다 깨닫는다.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 세상 사는 동안

먹고, 자고, 배출하는 가장 단순한 일조차

내 손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건강할 땐 그 단순함이 얼마나 귀한 건지 모른다.

몸은 제 할 일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고,

나는 그 당연함 위에서

돈 걱정, 사람 걱정, 내일 걱정 같은

허다한 근심들을 쌓아 올린다.

그 근심이 얼마나 사소한지 알게 되는 건

몸이 제 기능을 멈출 때다.


아프면 세상이 단순해진다.

‘살아야 한다’는 명제 하나만 남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뒤로 물러난다.

내 몸이 움직이지 못하면

돈도, 일도, 계획도

모두 빛을 잃는다.


그런 날이 찾아오면,

나는 잠시라도 무리했던 내 몸을 떠올린다.

아플 틈도 없이 달리게 한 건 나였다.

그리고 묻는다.

이게 나를 잘 살게 하는 길이었을까.


먹고, 자고, 배출하는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일들이

아프면 기적이 된다.


그 기적을 내 힘으로 지킬 수 있다는 건

삶이 내게 건넨 가장 고요한 선물이었다.


오늘은 마음을 조금 덜 채우고,

웃음을 조금 더 보태기로 했다.

내 몸이 나를 살게 해주고 있는

이 당연한 기적에

고개 숙여 감사하기로 했다.

언젠가 또 기운이 빠지는 날이 와도

오늘 이 마음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날에도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마라토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