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하얗게 불태운 밤, 잊고 있던 나와 마주하다」

by 서강


7년 전, 지인 언니가 딸과 다녀온 흠뻑쇼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날 언니의 얼굴은 아직 공연장에서 돌아오지 않은 사람처럼 반짝였다.

“꼭 가봐, 인생에 한 번은 경험할 만해.”

그 말이 귓가에 오래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매해 여름 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가지 못했다.


아이들의 ”엄마 무릎이 안 좋아 힘들 텐데 “라는 걱정 어린 말에 가스라이팅을 당하며 7년이 흘렀다.


그러다 올여름, 지인들과의 대화 속에서 흠뻑쇼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중 한 명이 광팬이었다. 티켓팅부터 준비물까지 도맡아 챙겨주었다. 덕분에 나는 공연 전부터 ‘경험자의 품’에 편안히 안겨 흠린이로서 시키는 대로 따르며 준비할 수 있었다.


대망의 날, 막내딸이 미리 준비해 준 파란색 티셔츠와 모자, 힙한 백바지를 꺼내 주었다.

“엄마, 오늘은 최소 스무 살 젊게 변신해야 돼.”

풀메이크업까지 해주며 만족해하는 딸 덕분에 거울 속 나는 막내의 딸이 되었다.


점심은 오리불고기로 배를 채웠다. 파란 티와 모자 차림의 우리는 동물원 원숭이처럼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사직구장에 도착하니 상황은 정반대였다. 파란색을 안 입은 사람이 오히려 이방인이었다. 눈 두 개 달린 사람이 눈 세 개 달린 마을에 들어선 듯 낯설어졌다.


길게 늘어선 줄, 태양빛에 달궈진 아스팔트, 포장마차의 유혹. 그러나 4시 반까지 입장 못 하면 무효라는 말에 우리는 헐레벌떡 뛰어야 했다. 지인이 티켓 발매를 미리 해둔 덕분에 무사히 입장. 지정석이었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스탠딩이 되었다. 뒷자리 끝이라 마음껏 흔들고 뛰어도 부담 없는 자리가 되어 오히려 좋았다.


물대포에서 흩날린 물방울이 얼굴에 사뿐히 내려앉는 순간, 무지개가 피어났다. 공연 시작 전 화장실 다녀오기, 얼음물과 간식 준비까지. 경험자 덕분에 흠린이는 편안함을 누렸다.


드디어. 첫 경험 콘서트 현장, 나는 어리둥절했다.

‘집에서 TV로 보면 되지, 뭐 하러 콘서트까지 와.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현장감에 압도되었다. 광기 속으로 몸을 던졌다.


내 몸 깊은 곳에서 오래 잠들어 있던 광기가 물을 만나 깨어났다. 나는 아주 가끔, 음악에 온몸을 맡기고 미친 듯 춤을 출 때가 있다. 배운 적은 없지만, 제대로 빠져들면 주위가 놀랄 만큼 제멋대로 흔들린다.


싸이의 노래 가사가 심장을 파고들었고, 그의 멘트는 주옥같았다. 인성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스트로 등장한 잔나비의 눈빛은 불길처럼 타올랐고, 비의 무대는 압도적이었다. 철저히 다져진 그의 몸매를 보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순간 ‘다시 태어난다면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노래와 몸짓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존재, 그게 얼마나 눈부신지 처음 알았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3만 명 가까운 인파 속에 섞여 있으니 나도 살아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동 그 자체였다. 중간에 한 번은 앉아 쉴 줄 알았는데, 네 시간은 오히려 모자랄 정도로 흠뻑 빠져들었다. 열 살 남짓한 아이부터 일흔을 넘긴 어르신까지, 남녀노소가 하나 되어 흔들리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다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과, 꿈결 같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내년에도 꼭 다시 오리라 마음을 굳혔다.


며느리가 친구에게 “우리 어머니 흠뻑쇼 가신대”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너네 어머니 진짜 대단하다. 너네도 아직 안 가봤잖아” 하며 놀랐다 한다. 며느리도 “어머니 진짜 멋져요”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염색샵 원장님에게도 흘려 말했더니 “와, 대단하세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고정관념이란 게 따로 있구나. 나 역시 그 속에 갇혀 살았다. 말로는 늘 ‘나다움’을 말하면서도, 정작 사회가 쳐놓은 틀에 맞춰 고개 숙이며 살아온 건 나였다. 숫자라는 나이에 스스로를 가두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은 오래 남았다. 흠뻑쇼는 단순한 콘서트가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으로의 일탈이었고, 내 안의 빗장을 여는 순간이었다. ‘비싼 돈 주고 공연을 왜 보냐’는 고정관념을 깨부순 자리였다.


아이들은 내가 사흘쯤 앓아눕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몸살은 없었다. 팔만 조금 뭉친 정도였다. 오히려 가장 젊은 지금 이 순간, 이런 경험 해보길 잘했다’는 감사가 마음에 가득했다.


1500명의 스태프에게 일자리를 주고, 수많은 이들의 여름을 빛내주는 싸이. 그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한 시대의 축제를 짓는 장인이었다.


올여름휴가를 반납했지만, 대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얻었다. 내년에도, 아니 70대 80대, 가능하다면 90대가 될 때까지도 이 공연에 오고 싶다. 싸이가 건재하다면, 나는 언제든 무대 아래에서 흠뻑 젖을 준비가 됐다.


“언제, 무엇에 흠뻑 젖어 ‘살아 있음을’ 확인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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