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 계약서의 함정

by 서강


류원의 펜트하우스 거실은 마치 미술관 같았다.

벽면에는 기하학적 조형물이 조용히 빛을 흘리고 있었고, 바닥의 대리석은 한낮에도 달빛처럼 차가웠다. 윤세하는 소파 끝에 앉아 조심스레 서류 가방을 열었다. 낮 동안 회의에서 쌓인 문서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쪽 서류철에서 묘하게 이질적인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대리인 교체 조항.”


그는 숨을 고르며 읽어 내려갔다.


“본 계약 당사자가 업무를 지속할 수 없을 시, 지정된 대리인은 본인을 전적으로 대체할 권리를 갖는다. 대리인은 혈연·경력·직책과 무관하더라도 당사자가 지정한 자일 경우 효력을 인정한다.”


한 줄 한 줄이 목구멍에 걸렸다. 단순히 ‘대리 업무’가 아니라, ‘정체성 자체의 대체’를 가능케 하는 문장이었다. 서류 하단에는 류원의 서명이 있었다. 그리고 옆 칸에는, 비어 있는 공간이 있었다.


윤세하는 공란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마치 그 빈칸에 자신의 이름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내가 이미… 지정된 건가?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알림 창에는 짧은 문구 하나.

[오늘 0시. 대역 계약. 장소 동일.]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젯밤 세탁소에서 본 알림과 똑같았다.


그는 불안에 떠는 손으로 서류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덮이지 않았다.

거실 창가로 다가가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유리창 너머 빛의 숲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는 마치 수면 아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전조 같았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부회장님, 이제 이동하실 시간입니다.”


비서의 차분한 목소리에 윤세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길은 끝내 그 공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빈칸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살아 있는 초대장 같았다.

그 초대장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아니, 누구일까.


4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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