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필사#75(D+316)
자신을 빨아들이는 행위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독서다. -니체-
내 일상이 지루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농밀하고 근사한 하루를 원한다면, 온종일 곱씹을 한 줄의 글을 가슴에 품어라-김종원 작가-
1970년대, 나의 유년 시절은 풍요와 거리가 멀었다. 뭐든 아끼고 귀하게 여기던 그 시절, 내게는 잊지 못할 작은 습관 하나가 있었다. 바로 단물이 다 빠져 쪼그라든 껌을 벽에 붙여 두었다가 다음 날 다시 씹는 일이었다. 혀끝을 맴도는 달콤함은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턱을 움직여 씹는 그 쫀득한 식감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저 ‘맛’이 아니라, ‘씹는 행위’ 자체가 소중한 즐거움이었다. 그러고 보니, 니체의 말처럼, 어쩌면 자신을 빨아들이는 행위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독서가 아닐까. 단물이 빠진 껌을 씹듯, 핵심을 넘어선 곳에서 더 깊은 깨달음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지루한 일상을 특별한 하루로 살아내는 비결이다.
일상은 때론 흑백 영화처럼 단조롭게 느껴진다. 똑같은 길, 똑같은 풍경.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우리는 농밀하고 근사한 삶을 갈망한다. 김종원 작가의 한 마디가 갈증으로 해소시킨다. "온종일 곱씹을 한 줄의 글을 가슴에 품어라." 이 단순한 문장이 거창한 삶의 목표보다 더 큰 울림을 준다. 마치 고대 로마의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걸었듯, 나 역시 하루를 시작하며 필사한 키워드를 택한다. 그 문장을 밥을 먹을 때도, 운전을 하면서 창밖을 볼 때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되뇌고 또 되뇐다. 한때는 단물이 빠진 껌처럼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 일상이, 그 문장 하나로 인해 생생한 빛깔을 되찾는다.
책은 단순한 지식의 창고가 아니다. 책 속의 문장들은 작가가 온몸으로 살아낸 경험의 응축이다. 책을 읽다가 마음에 깊이 박힌 한 문장을 발견하면, 반드시 손으로 옮겨 적는다. 나의 필사 노트에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드 몽테뉴부터 현대 작가들까지, 수많은 거인의 문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예컨대 몽테뉴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나의 삶을 잘 꾸려나가는 것이다"라고 쓴 부분을 옮겨 적었을 때, 나는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행복을 가꾸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글자를 따라 쓰는 행위는 단순한 베껴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만나는 신성한 의식이다. 그렇게 필사를 마치고 나면, 문장은 더 이상 활자가 아니다. 내 가슴에 새겨진 단단한 키워드가 된다.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와 대화하는 것이다.” 이 짧은 한마디 안에는 독서의 진실이 담겨 있다. 책은 단순히 활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다. 저자의 생각과 만나고, 그와 논쟁하며, 때로는 동의하고 때로는 반박하는 살아 있는 대화다. 몽테뉴가 살던 시대, 유럽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사람들은 권위와 교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던 습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이성과 목소리를 찾고자 했다. 그때 독서는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혁명적인 행위였다.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어떤 태도로 임할까? 시험을 위해, 자격증을 위해, 남에게 보이기 위해 책을 펼치지는 않을까? 몽테뉴가 말한 독서의 진실은 다르다. 책 속에서 저자와 대화하듯, 질문하고, 의심하고, 사색하며 결국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독서는 완성된다.
오늘날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서가를 메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곱씹지 않고, 대화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그 책은 단지 지나간 바람에 불과하다. 책을 읽을 때 한 줄을 붙잡아보자. 그 문장에 질문을 던지자. “정말 그런가?” 저자와 대화하듯 반박하거나, 혹은 동의하자. 마지막으로 그 문장을 오늘 하루에 적용해 보자. 몽테뉴는 500년 전 이미 이 진실을 깨달았다. 책은 대화다. 그 대화는 결국 나 자신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더 깊은 나를 만나게 된다.
오늘, 2025년 9월 25일. 나는 여전히 일상의 페이지를 넘긴다. 그리고 변함없이 가슴에 품을 한 문장을 고른다. 단물이 빠진 껌의 씹는 맛이 내게 소중했듯, 이제 나는 삶의 본질을 곱씹는다. 이 습관은 나의 지루했던 일상을 가장 빛나는 창조의 순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껌처럼 단물을 다 빼고 뱉어내는 삶이 아니라, 아무 맛도 없는 껍질까지 사랑하고 곱씹는 삶을 살아보자. 삶이 풍요로워지는 비결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바로 당신의 일상 속에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