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필사#74(D+315)
아이들의 20대 사진을 본다.
풋풋하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어느새 아이들이 내가 그들을 낳고 돌보던 나이가 되어 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데, 나도 중년이 되어 있으니. 시간은 참 빠르다.
젊을 때는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하루하루가 길고 지루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가속도가 붙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새로운 경험이 줄어들기 때문일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특별한 순간들이 사라지면서. 시간은 기억으로 측정되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라고, 자라면 늙고, 늙으면 죽는다.”
이 단순한 진실을 받아들인 후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어차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젊음도, 늙음도.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니체의 말을 되새기며 결심한다.
남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고
오늘부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것들
× 아침마다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하기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주 “사랑한다” 말하기
× 미뤄두었던 꿈들을 하나씩 실행하기
×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기
× 가장 젊은 지금을 온전히 누리기
헬렌 켈러는 말했다.
“삶은 대담한 모험이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The Open Door, 1957)
맞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보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젊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 보인다.
아침 커피 한 잔의 소중함.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저녁.
건강한 몸으로 걸을 수 있다는 기적.
죽음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젊을 때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 ― 외모, 성공, 인정 ―이제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에서 말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바로 그것이다.
죽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스무 살이든 쉰 살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
이것은 슬픈 현실이 아니라 그저 현실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
오늘부터 시작하자.
미뤄두었던 전화 한 통.
하고 싶었던 일 하나.
가고 싶었던 곳 한 곳.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다.
젊음은 늙고, 늙으면 죽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간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 글을 필사하며 삶을 새기는 사람, 서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