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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기록하여 남기는 삶

by 서글

생일을 사흘 앞둔 오늘, 나의 만 나이는 서른둘이다. 사흘 뒤면 서른셋이 된다. 한국 나이로는 무려 서른다섯이다. 어디 가서 "이제 젊지 않다"는 말을 듣기에 애매하지 않은 나이다. 요즘 내 친구들은 거울 보기가 두렵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생각이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사람 사는 모습이 다 비슷하다는 사실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매년 비슷하게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도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반가운 날이 찾아온다.


그 날은 바로 생일이다. 내 생일은 12월에 있다. 시기 특성상 생일에는 늘 몇 가지 신경 쓰이는 것들이 따라온다. 그중 하나는 특유의 ‘겨울 냄새’다. 11월부터 슬금슬금 찾아오는 차가운 공기, 두꺼운 옷, 해가 빨리 지는 저녁의 분위기.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냄새는 나에게는 오래된 향수처럼 다가온다. 생일날 눈이 내리나 안 내리나 내심 기대하기도 한다. 내릴 때면, 왠지 내가 특별한 날에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지면서 더 들뜨게 된다. 글을 쓰다 보니 눈 내리는 17일을 다시 기대하게 된다.


12월의 생일이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의미는 한 해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연말이기에 누구나 하는 생각이지 않나 싶을 수 있겠지만, 생일이라는 이벤트 덕분에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와중에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조금 더 집요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오래간만에 자기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안아주는 시간을 가진달까? 지난 서른 번째 생일에는 괜히 특별한 일이 있기를 내심 기대했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앞자리가 바뀌며 ‘삼십 대’라는 꼬리표를 거머쥐게 됐다는 사실만이 불쾌하게 남아 있었다. 삼십 대 중반을 향해가며 매년 한 해를 곱씹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반성하는 시간도 늘었고, “내년엔 같은 생각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크고 작은 계획들을 세우곤 한다.


올해는 지난 나의 성장 과정과 앞으로의 삶을 기록하기로 다짐했다. 풀리지 않은 실뭉치처럼 오래도록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답답한 마음.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차근차근 글로 풀어내야만 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질 것 같다. 그림, 음악, 글 등.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내가 글을 택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간에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낼 수 있다는 점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용접을 처음 만났던 십 대 시절부터 신발 수선, 전복 회사 취직, 배달 라이더 등 도전이라는 핑계로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시간들. 간절히 바라던 향수 회사 취직 스토리와 지금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까지. 앞으로 나는 이 모든 일대기를 천천히 남겨놓으려 한다.


ㅇㄷㅈ.png 유튜브 채널 <B 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이동진이 말하는 기록하는 삶' 中

최근에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파이아키아>에서 '이동진이 말하는 기록하는 삶' 콘텐츠를 통해 한 말이 인상 깊었다. "선명한 기억보다 희미한 기록이 낫다." 나는 이 문장의 힘을 믿으면서. 소중한 추억과 앞으로 펼쳐질 일상의 희로애락을 기록해 나아갈 계획이다.


'서글'은 그렇게 천천히 기록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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