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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후반에 접어들며

고등학교라는 사회

by 서글

우리 아버지는 나의 성적에 대해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으셨다. 예의(禮儀)를 중요시 여기던 아버지의 성격상, 성적이라는 지표가 사람의 됨됨이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내가 다니고 싶어 하던 학원만큼은 보내주셨다. 집단에 이탈된 아들이 혹여나 기죽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쥐어짜내서라도 지원해 주셨을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늘 무색하게 만들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금방금방 찾아왔다. 그 시절 성적표에서 풍겨오던 칙칙한 향을 기억한다. 건조하고 보드라운 종이 위에 묵직한 잉크 냄새가 뒤섞인 회색 성적표에 등수가 기재된 채 전달됐다. 우리 중학교는 한 학급에 평균 서른에서 마흔 명 남짓 무리를 이뤘다. 3학년 때는 무려 열여덟 반까지 있었는데 간단히 계산해 봐도 육백에서 칠백 명 되는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늘 육백 등 대에 머물렀을 것이다.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고 해서, 부끄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는 성적과 무관하게 ‘뺑뺑이’라 불리던 랜덤 배정 방식이 시행되고 있었다. 진학을 희망하는 고등학교를 1 지망부터 약 10 지망까지 순서대로 적어 제출했는데, 웬만하면 1 지망에 배정되곤 했다. 작은 동네에 거주했던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어울리던 무리가 있었다. 무리 중 다수가 ‘로얄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우리는 스스로를 ‘로얄팸’이라 불렀으며 주변에서도 그렇게 불러 주었다.


로얄팸 대부분은 B고등학교에 단체로 지원하는 분위기였다. 그중 우리 집과 가장 가까이 살던, 공부 욕심이 있던 현이는 내게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바른 이미지에 서울권 대학 진학률이 높다고 알려진 D고등학교에 함께 지원해 조용히 공부하며 지내자는 것이었다. 학업을 지나치게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나는, 그 제안이 싫지 않았다. 게다가 D고등학교의 교복이 예쁘다는 소문도 한몫했다. 복장과 두발 규제가 심하던 시절이었으니, 매일 입어야 하는 교복은 학교를 선별하는 충분한 이유 중 하나였다.


배정 결과가 발표되던 날이었다. 하교 인사를 마치고 먼저 끝난 나는, 2층에 있던 현이네 반으로 급히 올라갔다. 계단 옆 교실 앞에 도착하던 순간, 후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오열하는 현이가 튀어나왔다. 현이는 우리가 함께 지망했던 고등학교에 떨어지고, 2 지망으로 배정되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같은 반에 친했던 택이와 로얄팸 멤버 중 당시에는 다소 덜 친했던 섭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섭이는 훗날 가장 자주 연락하게 되는 친구가 된다. 공부도, 사회생활도 잘했던 현이는 새로운 학교에 가서도 수월하게 적응해 냈다.


학교를 다니다 보면 각 학교마다 ‘좀 논다’ 싶은 아이들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들려오기 마련이다. 우리 중학교를 주름잡던 무리 중 몇 명은 현이네 반에 있었는데, 학기 후반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중 한 친구인 석이가 1 지망에 떨어져 3 지망이었던 우리 고등학교로 배정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친구들 사이에도 나름의 위계라는 게 있지 않은가. 처음 몇 달은 다소 삭막했지만, 힘겨루기를 즐기지 않는 분위기의 우리 학교는 그 친구를 중심으로 ‘놀다 온 아이들’이 평화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갔다.


돌이켜보면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가운데 고등학교 생활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사춘기가 절정이던 중학교 시절의 그늘이 걷히고, 얼굴이 한결 밝아진 채 진학한 고등학교에서는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이 더 이상 어렵지 않았고, 둥글둥글하던 젖살 가득한 얼굴은 어느새 날렵해졌다. 로얄팸은 방학 동안 매일 같이 축구를 할 정도로 평소 축구를 좋아했는데, 각자 고등학교 축구 동아리에 들어가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학교 축구부의 부주장을 맡기도 했다. 제법 남자다워진 모습 때문이었을까, 이성 친구들의 관심도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타고난 성향이 숫기 없는 편이었고, 누군가가 먼저 관심을 표현해 주는 경험도 처음이었던 나는, 교제라는 관계의 의미를 조금씩 자연스럽게 배워갔다.


한 무리 안에서의 역할, 이성과의 관계, 그리고 막연한 진로에 대한 고민까지.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 나아가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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