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고찰

by 서행하

지이이이잉....

지이이이잉.......!


휴대전화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간만에 세상을 향해 꽁꽁 닫아놨던 잠금문을 손가락으로 밀어 해제시켰다.


"어~ 미아! 무슨 일이야!"


"그냥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


"나야 잘 지내지~ 안부 물어볼라고 전화했구나?"


"응. 오늘 날씨가 너무 좋더라고!"


"어 뭐야~ 날씨가 좋아서 내 생각이 났다고?"


"응."


"헐.. 감동~!! >0<"


"날씨 좋으니까 밖에 나가서 햇빛도 쬐고 해."


"고마워~!!"


그러고는 얼마간 조잘조잘.. 특별한 용건도 의미도 없는 짧은 통화를 마쳤다.




민주씨는 친구가 많지 않다.

손가락으로 그 수를 헤아려 보라고 하면 한 손으로 다 끝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녀는 늘 그런 스스로가 불만이었다.

주제도 못 되면서 늘 시선은 외부로 향해 있었던 바,

그 탓에 늘 친구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하며 살았더랬다.

그러나

마당발의 인싸력을 동경하면서도 기질상 절대 얕고 넓은 관계는 맺을 수도 지켜낼 수도 없는 민주씨.

새로운 인간관계를 기대하며 소모임에 도전해 보기도 했으나, 역시나 민주씨에게는 극, 극, 극 소수의 사람만 겨우 남았을 뿐 나머지 사람들과는 늘 그랬듯이 결국엔 소원해졌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어릴 때는 나름 활발하게 친구들을 두루 사귀었고, 어설픈 인싸력이나마 자기계발 하듯 열심을 다해 노력하다 보면 될 거라고 굳게 믿고서 친구들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런 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남아 늘 관계에 있어서 애쓰는 쪽에 서 있던 민주씨였다.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 만큼 남을 대하라.. 라는,

오래 전에 어디선가 읽은 출처 모를 명언을 굳게 믿고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노력이 부족했는지 아니면 그녀에게 애초에 그런 '복'이 없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나쳤던 그녀의 '기대' 때문이었는지..

애쓰고 애쓰다.. 어느 순간 탁!..

무언가 끊어지는 것처럼 모든 것이 블랙아웃 되어 버렸다.

지쳤는지 포기했는지 고갈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이 아니고, 그냥 인생을 잘못 산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모든 걸 놓아버린 민주씨에게 친구란.. 나 혼자서만 발버둥치는 짝사랑같은 개념의 피로한 관계일 뿐이었다.


정확한 수치로 헤아릴 수 없는 짧지 않은 시간, 막연한 세월이 한여름 새벽의 안개낀 호수마냥 흐릿하고 불분명하게 흐르고.

민주씨는 그저 그렇게 '숨 쉬고 살아낼' 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친구의 '선'연락을 받게 된 그녀.

별안간 마음이 울렁울렁..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그 날의 하늘처럼 맑고 따스한 파문이 조용히 가슴에 일었다.


진짜 별거 아닌데.

이게 뭐라고.

지나온 내 달픈 세월이 나에게 말해주는 느낌이다.

너 인생 잘못 살지 않았다고.


민주씨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녀는 잘못 살지 않았고 나름 잘 살아왔으며,

날씨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친구를 생각하며 먼저 연락을 건네는 사려를, 그 잠시간의 다정함을.. 정작 그녀 스스로는 노력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걸.

내가 대접받길 원하는 만큼 남을 대한 적이.. 사실상 없었다는 걸..


민주씨는 수 십 년의 세월을 넘어 곁에 남아준 한 손 안의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 친구들의 마음을, 그 친구들의 사려를, 그 친구들의 다정함을 생각했다.

날씨가 좋다고, 날씨가 안 좋다고, 그냥 생각난다고.

아무 의미도 용건도 목적도 없이 시간을 내어 마음을 내어주는 그들을 생각했다.


이들은 나를 웃게하고, 눈물짓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민주씨는 그 날 창 밖의 맑은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삶에 감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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