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3

전적으로 나의 기억에 의존한 바, 알아서 걸러 보시길 권장합니다.

by 서행하


그래도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위해 나름 변호라는 걸 해 보자면,

극히 일부의 몇 사람 빼고는 그래도 다들 처음엔 친절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요약해서 간략하게 적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불편감을 야기할 수는 있으나 엄청나게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2019년 어느 날. H.


입사 초기 수습 기간부터 나를 겨냥한 습관적인 지적과 짜증.

같은 날 입사한(심지어 나보다 늦게 입사한) 동료와 똑같은 실수를 해도 나에게만 차별적이었던 모욕적 피드백.


이 사람은 당시 매장의 우두머리였고, 그 모든 행동들은 다른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질 때도 있었다.

이게 뜻밖의 나비효과가 되었다.


이 사람과의 기억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셀 수 없다.

같이 일했던 1년여의 기간 동안, 단 하루도 좋은 기억이 없을 정도.

그 당시 휴대폰으로 녹취를 딸까를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생각 때문에.

다 내 잘못에서 기인했다는 생각 때문에.






2019년 어느 날. H.


H와의 기억을 마무리하고 넘어가려는데 갑자기 하나 떠올랐다.


내가 실수를 했다.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나 때문에 또 이런 상황이 초래됐다는 자책감에 목소리는 한없이 기어들어갔다.

그런 나에게 H는 이런 말을 했다.


진심이 안 느껴지는데?


어디서 본 말이지 않은가.

내가 도대체 무얼 어떻게 잘못하고 있길래 내 진심을 아무도 믿어주질 않지..?

이때부터는 나조차도 내 진심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실수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긴장이 더 잦은 실수를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었다.






2020년 어느 날. H.


내가 퇴사를 결정하자 갑자기 친절해진 H.

마지막 면담 자리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1년 동안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네. 그건 미안해요.

우리 매장이랑 안 맞았을 뿐이지, ○○씨 손 빠르니까 다른 곳에서는 잘할 거예요.


그래도 이 사람은 사과는 했다.

그리고 나는

저 말뿐인 사과에 또다시 그 빌어먹을 "괜찮아요"라는 말을 해버렸다.

나는 그동안 저런 사람들 앞에서 늘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를 아무리 함부로 대해도 '괜찮아'야만 하는 사람.


지금에 와서야 이 간장 종지는 말할 수 있다.


말에 진심이 안 느껴져요.






2019년 어느 날. O.


H가 나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걸 파악하자마자 SNS로 나를 언팔하고 차단했다.


내가 입사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2019년 어느 날. O.


이 친구의 방식은 꽤 신박했다.

내가 일해놓고 간 자리를 구석구석 체크하고는, 조금의 틈이라도 발견하면 큰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아무리 일하기 싫어도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


일하기 싫으면 말하세요. 내가 할 테니까.


음..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이 친구도 그닥.. 내가 이 친구가 흘려놓고 간 얼룩 닦아준 것만 몇 번인지 셀 수도 없는데.

지적하는 것도, 생색내는 것도 싫어해서 그저 아무 말 없이 수습해 줬을 뿐.






2020년 마지막 근무 날. O.


소스를 만들고 뒷정리를 하다가 갑작스런 손님 응대로 급히 나가는 바람에 그대로 정리 마무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걸 착실하게 체크한 O.


퇴사한다고 일 마무리를 이렇게 대충 하시면 어떡해요.


해명하자면, 나는 일하기 싫었던 적 한 번도 없었다.

3번을 지원하고 간신히 입사한 회사였다. 어렵게 들어온 만큼 소중한 직장이었다.

어떻게 일하기 싫을 수가 있었겠는가.

구차하지만 이 친구 부분은 내가 억울한 게 많아서 사족이 자꾸 생긴다.

구질구질하지만 봐주세요.






2019년 어느 날. 다른 L.


나와 같은 날 입사한 입사 동기.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진짜' 입사 동기라고 볼 순 없었다.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

근무 중 한가한 틈을 타서 내가 내린 에스프레소를 먹어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건설적인 피드백을 기대하던 나의 부푼 마음을 와장창 깨뜨린 한마디.


이따위로 내리니까 이런 맛이 나죠.


'이따위'가 구체적으로 뭔지,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지 설명은 해주지..






2020년 어느 날. 작은 O.


나이로도 입사 순서로도 막내였던 작은 O.


당시 같은 직급의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이와 경력에 상관없이 서로를 '○○님'이라고 부르는 게 암묵적인 흐름이었다.

동료에 대한 존중의 뉘앙스를 담는 최소한의 표현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작은 O가 이제껏 잘 불러오던 호칭을 갑자기 바꾸며 나를 이렇게 지칭했다.


○○○씨.


나는 이를 공식적인 하대로 받아들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이날은 참지 않고 꿈틀거렸다.

"아~ 이제는 나를 '○○○씨'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랬더니 이후 조용히 다시 나를 '○○님'이라고 고쳐 불렀다.






나비효과는 독처럼 퍼져나가더니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걷잡을 수 없게 전개되었다.

이제는 단순히 내가 열심히 하고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나마 나에게 우호적이었던 다른 직원들마저, H를 따라 나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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