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충격과 당혹감이 온 몸을 휘어감는 오후.
민주씨는 멍하니 빈 벽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스터디 카페 1인실에 들어 앉아, 공부는 고사하고 e-book 리더기로 책이나 읽고 있던 민주씨.
그녀는 우연히 읽게 된 한 편의 책으로 인해 일생동안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이런 게 무슨 비밀이냐고?
말도 못하게 거대한, 엄청난 비밀이다.
이 나이 먹도록 몰랐던,
내 인생이 나에게까지 숨긴 거대하고 중대한 비밀이었으니.
책 속에서 말하고 있는 '예민한 사람'의 모든 특징이 그 누구도 아닌 민주씨를 가리키고 있었다.
순간, 그 책의 작가가 자신의 일생의 모습을 몰래카메라로 관찰한 다음 집필한 것이 아닌지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큼.
민주씨는 스스로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다.
오히려 둔해서 변화에 밝지 못하고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한 채 멀뚱-히 멈춰 서 있는, 예민하지 못해서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그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거 아닌 자극이 민주씨에게는 늘 어려웠다.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고 의식하기 싫어도 자동으로 에너지가 쓰이고 줄줄 샜다.
모든 감각이 날이 선 채 주변의 모든 것을 일일이 감지하며 분주히 돌아가고 있으니
혼자 있어도 늘 바빴다.
사람들이 많은 모임에라도 나가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져 3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회복기를 가져야만 했다.
그런 스스로를 늘 납득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고 자책하던 민주씨였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던 민주씨였다.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고.
모든 억지 논리를 끼워 맞춰서라도 부정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책에서 말하고 있는 '예민한 사람'이 '너무나도 나'인 것을 부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골똘히 생각에 감기다가 문득 슬퍼졌다.
내가 이런 나에 대해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다면, 나의 지금이 조금은 달라졌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어쩌자고 이제까지 나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못했던 걸까.
왜 다른 사람들만 신경쓰고 '나'를 신경쓰지 못했던 걸까.
민주씨는 지난 시간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씁쓸히 두 손을 만지작 거렸다.
타인의 작은 눈빛, 몸짓, 말투에도 모든 센서를 가동하며 눈치 보느라 바빴던 민주씨는 자연스레 녹록치 않은 사회생활을 해야 했고, 그렇게 어영부영 36살이 되어버렸다.
사람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하다 스스로의 성장과 발전은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지금은 그저 빚더미에 앉은 실패한 자영업자가 되어 36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재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고 스터디 카페에 앉아있는 것이었다.
민주씨는 허무히 텅 빈 벽을 응시했다.
얼마동안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민주씨는 멍하니 던졌던 시선을 조금씩 거두기 시작했다.
한편 충격과 회한과 슬픔이 뒤섞여 잠시 멈췄던 머리는 다시 조금씩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예민한만큼 섬세했고, 섬세했던 만큼 꼼꼼하고 확실했던 민주씨.
비록 지난 세월이 그녀 스스로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해도,
그녀는 분명 잘 하는 부분에서는 무조건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이제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그녀의 다음을.
그리고 움직여야 했다.
이제는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그녀 자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