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의 독한 폭우로 천변이 다 물에 잠겨 유사 한강이 되었다.
며칠째 달리지 못하다가 기어이 오랜만에 산보를 겸한 달리기에 나섰다.
비가 멎은지 벌써 며칠이 흘렀는데,
내가 늘상 달리던 그곳은 풍경도 냄새도 사뭇 달라져 있었다.
항상 더운 공기를 머금고도 그 뜨거움보다
가벼운 상쾌함으로 날 맞아주던 그 냄새.
오늘은 달랐다.
여기저기 길이 깨진 조각들 부스러기들.
구간마다 산처럼 쌓인 풀의 무덤들. 그 사이로
일제히 땅바닥에 눌러붙어 죽은 듯 누워있는 풀의
시체 행렬이 길 전체를 휘어감고 있었다.
짓이겨지고 으깨져서 온몸의 즙액을 내뿜고 죽어가는
피 냄새가 났다.
그 와중에
그 끝없는 파멸의 와중에도 드문드문
철철 피 쏟은 몸을 기어이 다시 일으키려는 생의 몸부림. 그 처절함을
보았다.
트랙 끝에 닿아 흐르는 물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하게 흐르는 이 검은 천사는
예의 그 눈을 아름답게 치켜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밤이 짙어질수록 더욱 반짝이는 그 빛의 눈동자를.
수마의 그것은 날 똑바로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뭘?"
그의 편에 선 바람은, 방관자가 되라는 듯
내 걸음을 자꾸만 떠밀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눈길을 돌렸고, 풀들은 그런 나를
텅 빈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데
그들 속에
그 풀의 무덤 속에 내가 (혹은 네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