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감사하는 이유
민주씨는 늘 스스로에 대해 다양하게 투덜거린다. 그 중 하나는 이것이다.
나는 창의력이 없어.
솔직히, 재능 없다.
T라서가 아니라 냉정하게 메타인지를 거친 결과가 그렇다.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려내는 재능이 없다. 그리고 그걸 그렇게도 귀찮아하고 싫어한다.
근데
과연 처음부터 그랬을까..?
민주씨의 초딩시절 소회를 나눠보고 싶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지금처럼 '창작'을 싫어하지는 않았다.
굳-이 찾아서 하지는 않았어도 기회가 닿으면 무엇이든 만들고 싶어했고, 그리고 싶어했고, 잘하지는 못했지만 계속 시도하고 싶어하는 아이였다.
근거는 전-혀 없었지만 이상하게 자신감이 들어 차 있었다.
뭐든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어했고, 주목받고 싶어하던 아이였다.
지금의 민주씨를 생각하면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민주씨는 그런 아이였다.
그것 때문에 '나댄다'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던 그녀였다.
그런 민주씨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절,
갑자기 그녀를 '따라쟁이'라고 부르는 친구가 나타났다.
자기가 그리는 그림을 민주씨가 따라 그린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는 완전히 오해였다.
민주씨는 친구의 그림을 따라 그린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그 친구의 그림을 부러워한 적도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집요하게 민주씨를 겨냥해서 '따라쟁이'라고 부르며 같은 반 친구, 다른 반 친구들 할 것 없이 모두에게 흉을 보고 다녔다.
하늘을 하늘색으로 칠해도, 나무를 갈색과 초록색으로 칠해도, 비슷한 게 단 하나만 있어도, 심지어 민주씨가 먼저 그려도 그 친구는 미술 시간이 끝난 후 크게 외쳤다.
"아- 또 따라했어! 쟤는 맨날 따라해!"
아니라고 열심히 읍소 해봐도, 가까이 있던 친구들이 목격 증인으로 나를 변호해도 그 친구는 막무가내였다.
이러는 통에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던 다른 친구들은 자연스레 그 친구가 외치는대로 민주씨를 따라쟁이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따라쟁이'가 되었다.
민주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미술 시간마다 그 친구와 겹치지 않으려고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게 아닌, 그 친구의 비난을 피하기 위한 그리기가 계속되었다.
민주씨가 스케치북 왼쪽 귀퉁이에 꽃을 그리고 싶어도, 그 친구가 같은 위치에 꽃을 그리는 것 같다 싶으면 피했다. 모양과 색상이 달라도 위치가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따라쟁이' 소리를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가 그냥 못된 아이였던 건지, 아니면 유난히 과민한 아이였던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심중이 어땠는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노이로제에 걸린 민주씨의 창작력은 점차 시들어갔다.
누군가는 이럴 때 겹치는 친구와 안 겹치기 위해 노력하다 도리어 창의력이 성장하기도 한다던데.
민주씨는 그 반대였다.
완전히 시들어갔다.
그나마 조금 있던 창의력도, 잘 못해도 계속 하고 싶어했던 창작욕구도, 특유의 자신감도.
그녀 자신의 의지와 감각으로 할 수 있었던 모든 창작을 완전히 멈추고 홀로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깝다.
하늘을 하늘색으로 칠한다고 뭐라고 하면, 보라색으로 칠하면 될 일이고
나무를 초록과 갈색으로 칠한다고 뭐라고 하면, 금색과 은색으로 칠하면 될 일이었을 텐데.
물론 하늘을 보라색으로 칠하고 나무를 금색과 은색으로 칠했다면, 그것도 이상하게 그렸다고 비난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께 혼나도 친구들에게 놀림 받아도, 최소한 남들과 다른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근데 거기까지 생각 해내기에 11살은 너무 어렸던 것 같기도 하고..
그 당시 스트레스가 그 정도로 컸었구나.. 싶기도 하고.
자신의 11살에게 여러모로 아쉬운 민주씨였다.
그래도 그런 11살을 보내던 민주씨에게도 나름의 도피처가 있기는 했다. 바로 '글쓰기'였다.
글쓰기 만큼은 누굴 따라할 필요도 없었고 민주씨가 자기를 따라한다고 우기는 친구도 없었으며, 그녀를 따라하는 친구도 없었다. 글만큼은 그 누구도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오롯이 '민주씨의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지금까지 놓치지 않고 겨우겨우 붙들고 있는 '유일한' 창작의 끈이 아니었을지. 새삼 고맙다. 펜에게. 컴퓨터 화면과 마우스 커서에게. 그리고 내 손가락에게.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다시 11살로 돌아가 그 때의 상황을 맞이했다면, 민주씨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씨는 그 겉면의 자신감과는 다르게 한 편으론 소심하기도 했고, 그 때부터 타인의 눈치를 심하게 보는 습관이 생겼기 때문에 결국에는 또 기가 죽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스스로를 묻어버리는 선택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때의 경험이 남은 인생에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영향을 줄 걸 예상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용기를 쥐어 짜내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민주씨는 이제 그림은 못 그린다.
그렇지만 글을 쓴다.
글로 그림을 그린다.
부족한 창의력이 아쉬울 때마다 생각한다.
그래도 쓸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야.
창의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나만의 것일 수도 있는걸 뭐.
썩 나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