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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의 첫 여행

남들 다 가봤다는 가족여행을 이제야 가봤습니다...

by seoha

참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30대 중반에 들어서야 부모님과 첫 여행을 다녀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확실한 건 정신적이든 금전적이든 관계없이 서로에게 내어줄 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게 가장 컸다. 그렇게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설 연휴를 활용해 부모님을 모시고 2박 3일의 자유여행을 갔다.


사실 우리는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전혀 몰랐다. 서로 음식 취향조차도 한식 외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서른을 넘기고서야 독립했기에 한 울타리 안에 산 시간이 꽤 길었음에도 말이다. 여행 전 일정을 짜는 도중 그 누구의 취향을 담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한국인들에게 그나마 잘 맞는다는 맛집들과 평이 나쁘지 않은 여행 스폿들을 안전장치 삼아 여행 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2박 3일 동안 부모님은 금기어 십계명(음식이 짜다. 한국돈으로 얼마냐, 돈 아깝다 등등..)을 잘 지키셨다. 매사 꼭 한 번씩 걸고넘어지는 우리 아빠는 예상외로 쿨했다. 웨이팅이 길면 긴 대로 즐거워했고, 음식에서 중국향신료가 강하게 느껴지면, 또 그것대로 타지에서의 경험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부모님은 모시고 가는 곳마다 '너무 좋다.'라는 말을 연신 남발하며 긴장감에 어깨가 굳어있는 나를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사실 그 말들이 진심이기를 바라지만 그 진심 너머 고생하는 딸을 위한 부모의 마음에서 우러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통해 느꼈던 건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미묘한 감정이 들었던 부분이 있다. 이제는 부모와 나의 관계가 조금씩 변한다는 걸 느낀다는 것이다. 여행 내내 중국어를 못하는 부모님은 나를 의지하셨고, 낯선 상황에서는 내 뒤로 가 서 계셨다. 내가 한없이 의지했던 두 사람이 이제는 그 자리를 조금씩 나에게 내어주고 있다는 것. 여행을 가서야 조금은 어른이 되고,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곱씹어보게 됐다.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는 두 사람을 향해 카메라를 연신 들이밀면서 한편으로는 뭉클했다. 이렇게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어릴 때부터 자주 다닐걸. 돌이켜보면 여유가 없다는 건 그저 핑계 없을 뿐인데, 무엇이 나를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었기에 이런 소중한 추억들을 미리 쟁여놓지 못했을까.


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과거의 아쉬움을 반추하기보다는 아직은 그래도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넉넉하다고 믿는다. 미루지 말고 차근차근, 올겨울 동방명주 앞에서 서로를 행복하게 바라보며 찍은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서라도 조만간 또다시 여행을 추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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