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스럽지만 품격은 지키고 싶어.

출신은 못바꿔도 우아하게 살아내고 싶어요.

by seoha

"여러분, 제 분노 버튼이 뭔지 아세요? 저는 제주 토박이로 30년 넘게 살았는데, 속된 말로 ‘촌년’ 취급을 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제 분노 버튼이 제대로 눌려요."


불만 고객 응대 교육을 할 때마다 종종 사용하는 이 멘트는 나에게 만능 치트키 같은 존재다. 다들 크게 웃고, 제주도 출신이라는 점을 신기해하곤 한다. 사실 이 멘트의 밑바탕에는 스스로가 아직 촌티를 벗지 못했다는 자의식이 깔려 있다. 지금은 예쁜 이름으로 개명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한때는 이름마저 촌스러워 괜한 자격지심도 있었다. 괜히 제주라는 ‘섬’이 나를 촌스럽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라 숨기고 싶었던 날도 많았다. 내가 서울만 가면 훨씬 세련된 옷을 입고, 멋진 사람들과 어울리며 고급 문화를 누릴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어느새 육지 생활도 4년 차. 뭐가 달라졌을까? 물론 세월에 속절없이 당하는 눈가의 주름만큼이나 세련미도 조금은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삶의 질은 더 단조롭고, 어쩐지 더 촌스러워졌다. 한때 "취미 부자’라 불릴 만큼 베이킹, 등산, 독서를 좋아하던 나였다. 매일 운동하고 샐러드를 챙겨 먹던 습관도 사라지고, 이제는 쿠팡이츠에 배달 음식 내역만 잔뜩 쌓여간다. 동네 치킨집 이름들이 줄줄이 적힌 주문 내역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낸다’에 가까웠던 그동안의 삶을, 결혼을 하루 앞두고 다시금 되돌아본다. 그렇게 지켜내고 싶었던 세련된 삶과 품격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일희일비하며 여유 없이 급급하게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는 너무 깊이 절여져 버린 건 아닐까.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서울에 와서 뭐라도 되고 싶었던 2~3년 전과 달리, 요즘은 굳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지 않더라도 내면이 단단하고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말과 행동,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서. 그동안 놓치고 있던 삶의 품격을 다시 조금씩 쌓아가야겠다. 결혼을 하면 더 쉽게 무너질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라도 차곡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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