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매년 신체검사 때마다 설렜다. 늘 반에서 키가 제일 컸던 나는 올해는 또 얼마나 컸을까, 괜히 자만하기도 했다. 수치로 보이는 나의 성장의 속도는 나름 만족할 수준이었기에. 하지만 안타깝게도 또래보다 발육이 빨랐던 나는, 이 짜릿한 경험을 열세 살부터 맛보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건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맡는 업무는 업무 평가나 고과가 나오는 일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장의 척도를 숫자나 어떤 객관적인 데이터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오로지 내가 의존했던 건 직장 상사들이나 동료들의 칭찬이나 주관적인 평가뿐. 직설적으로 '잘했다'라는 말은 좀처럼 듣기 힘들었고, 말의 뉘앙스 나를 대하는 태도, 눈빛 등 수많은 단서들을 임의적으로 조합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사회가 칭찬에 인색한 건지, 내가 그만한 역량을 못 키워서인지 좀처럼 성장은 남들보다 더디게만 느껴지고 좌절감도 많이 느꼈다. 도대체 언제쯤? 서른이 넘으면 달라질까? 늘 다그치고 좌절하면서.
최근에 조금 자의식 과잉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내가 또 한차례 성장을 했다고 느꼈던 건 '결혼'이라는 의례를 거치고 나서이다. '요이, 땅!'하고 호기롭게 시작한 결혼 준비는 좀처럼 녹록지 않았다. 둘 만이 아닌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라는 말을 실감했고, 청첩장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돌려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좁디좁은 나의 인간관계를 중간점검하는 느낌이라 속상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드레스, 스튜디오, 촬영업체, 심지어 부케도 다 하나하나 공수를 들이며 찾아봐야 했다. 이제야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회사 동료들이 '고슴도치'같았다고 표현한 걸 보면 예민함의 끝을 향해 전력질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편과 맨날 싸우고(내가 일방적으로..) 울고 불고.. 아슬아슬 줄 타는 듯했던 준비 과정 끝에 '결혼식'이라는 엔딩이 끝난 순간 마음에 좀처럼 찾기 힘들었던 평화가 찾아왔다. 지나고서야 별 게 아닌데 왜 그렇게 사소한 것들에 집착했을까 하는 후회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교차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고작 30분도 되지 않는, 공장같이 찍어내는 '결혼식'이 끝나면서 한차례 '성장'을 느꼈고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굴곡을 겪었던 모든 여성들이 공감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때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보는 사람마다 '피곤함'은 남아있어도 편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한다.(으레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편함의 기저에는 아마 전전긍긍했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사소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껴서일까. 그 모든 것들이 초연하게 느껴졌다.
매일매일 퀘스트를 깨고, 산을 오르는 여정이라고 느꼈던 삶이었는데 이제 삶은 조금씩 잔잔한 바다로 접어들어가고 있다. 파도가 일지 않는 아주 잔잔한. 성장통을 겪었던 후 키가 한 뼘 자랐던 초등학교 시절의 짜릿하면서도 신기했던 그날들의 느낌들이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다시 느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