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나는 옷을 보는 안목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스스로에게서 묘한 촌티가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W컨셉과 29CM 같은 패션 플랫폼들의 등장은 내게 작은 구원이 되었다. 덕분에 옷 고르는 일이 한결 수월해졌고, ‘이제 나도 좀 감각 있어 보일 수 있겠지’ 하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옷을 잘 입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기 순’과 ‘리뷰 많은 순’만을 기준으로 고르느냐, 아니냐.
나 역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무난한 선택을 반복했다. 장바구니엔 늘 비슷비슷한 옷들이 채워졌고, 구매의 결과는 늘 ‘괜찮은데 뭔가 아쉬운’ 수준에서 멈췄다. 강남으로 출근하며 지하철을 탈 때면 놀랍게도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한 칸에서 두세 명은 꼭 마주친다. 내 또래 여성들의 쇼핑 루트가 다 비슷할 테니 그럴 만하지만, 그래도 마주치면 묘하게 민망하다. 옷을 입고 있음에도 괜히 몸을 가리게 되는 순간. 그 장면이 내 안의 ‘무채색’을 더 뚜렷이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자연스레 생각이 깊어졌다.
‘실패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남들이 하는 선택만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나만의 색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평범하게 산다는 것과 무색무취하게 산다는 건 분명 다르다.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계속해서 안목 없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나의 기준’을 세워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마침 추석 상여금과 입사 1년 차 성과금이 통장에 들어왔다. 물론 내 기준에서의 ‘두둑함’은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얇디얇겠지만, 그래도 그 돈으로 나를 표현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향수를 사러 갔다.
‘나는 스모키하고 편백 향이 나는 우드 계열을 좋아하니까, 이솝으로 가야지.’ 그렇게 동탄 롯데백화점으로 향했다. 직원이 처음 시향해준 향이 내 취향에 딱 맞았다. 그런데 두 번째 향수를 건네며 “이건 한소희가 데일리로 쓰는 향이에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잠시 흔들렸다.
연예인의 선택에 기대어 갈지, 내 코를 믿을지. 결국 나는 처음의 향을 선택했다. 아마도 ‘인기템’이 아닌 ‘나의 취향’으로 고른 첫 향수였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모른다는 걸 들키기 싫은 마음’과 ‘실패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사이에서 흔들렸다. 그래서 남들의 기준에 휩쓸렸고, 그만큼 감정의 파도에도 쉽게 흔들렸다.
이제는 중심을 잡아줄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옷 브랜드를 알아가고, 내 향을 찾고, 좋아하는 공간과 책을 쌓아가는 일. 그건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연습일지도 모른다.
조금 느리더라도, 그렇게 나만의 방식으로 쌓아가는 것.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