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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an 15. 2023

스키장에서

운동신경이 없다 보니 스포츠 종목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하는 스포츠는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티에서 같이 스키 타러 갈 사람을 모은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손을 들었다. 스키를 너무 타보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강원도로 차를 타고 가고, 스키복과 장비를 대여하고, 어렵게 차용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비집고 곤돌라를 타는 것부터 에너지가 빨렸다. 타보기도 전에 지쳐버린 내가 더 질려버렸던 건, 스키 장비를 착용하자마자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과 생각보다 내가 이 스키장에서 제일 못 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같이 온 동료들은 처음이라 괜찮다고 다독이며 나를 계속 케어해 줬지만, 그럴수록 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써주는 게 감사하면서도 미안했다.


 진작 남들이 어릴 때 한번쯤 해볼 때 따라라도 해봤어야지, 나중에 욕먹지 않는다며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빴다. 나보다 훨씬 어린애들도 쌩쌩 잘 지나가는데 나이는 어디로 먹고 이것 하난 제대로 하지 못하나 슬펐다. 그래도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응원해 주며 도와준 동료들 덕분에 두 번째 시도부터 어느 정도 감을 잡고, 능숙까진 아니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흐름을 타면서 즐길 수 있게 됐다. 한 줌의 자신감과 쾌감을 얻고,  왜 다들 겨울철에 사람 바글바글한 이곳에, 적지 않은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오는지 알게 됐다. 다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한층 흥분된 목소리로 열심히 오늘의 '썰'을 풀고 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이라도 경험해서 좋네요'라며 응원해 줬다.


 방송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해보지 않은 경험들을 많이 해봤지만, 그와 반대로 남들이 많이 해본 것들을 많이 해보지 못했다. 프리랜서라는 불안했던 삶 속에서 to-do list엔 늘 성과와 성공을 위한 추상적인 목표들만 가득했을 뿐, 가시적인 경험들과 체험들은 그다음 퀘스트라며 미뤄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들이 겨울 스키를 비롯해  내일로 여행, 클럽 가보기, 스킨스쿠버와 같은 것들이었다.  평소 그 나이대에 걸맞은 경험들이 있다고 믿어왔던 탓에, 시기를 놓쳐버린 것들에 대해선 아쉽지만 나와 인연이 아니었다고 단정 지었는데, 그러기엔 아직도 나는 못해본 것들이 너무 많고, 호기심도 꽤 많은 사람이었다.


 서른이 넘은 지금, 아직도 새로운 것들이 많고,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음에 너무나도 감사하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속에서도 그날의 온도와 습도, 날씨와 기분이 다 제각각이듯, 그 모든 날들을 만들어가는 기록들도 서로 다르게 적히는데, 그만큼 아직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많고, 거기서 나를 또 알아갈 수 있는 기회들을 마주하고 있다. 단편적인 기억들 속에서 으레 '나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고 살아왔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들은 '나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네?'라는 아하 포인트를 만들어준다. 짧은 스키장에서의 추억이 한동안 잔상으로 남아 더 넓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게 해주는 밑거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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