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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an 21. 2023

제주를 담은 곳들.

 31 동안 제주에서 살고, 방송일을 통해 제주를 홍보하는 역할을 하면서 제주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 사람들에게 제주와 나는 애증의 관계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애증도 결국엔 사랑이었다.) 하지만 모든 생각의 끝에는 씁쓸함만 남아 있었다. 이유는 하나, 내가 나고 자라면서 느꼈던 제주의 이미지와, 관광객들에게 상품으로써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제주의 이미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스무  무렵 상경했을 때만 해도 '제주 출신'이라는 어람이 주는 이미지는 숨기고 을 정도로 '시골' 이미지가 강했다면  이후 연예인들의 제주살이가 조명을 받기 시작하며 '힐링의 공간' 이미지를 구축했고,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막히자 모든 관광 수요가 제주로 몰리면서 더욱 상업화된 공간이 되었다.


 보잘것없는, 이른바 예쁜 쓰레기라고 불리는, 실용성 없는 물건에도 제주라는 콘텐츠를  풀어낸다면 SNS상에서 대란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를 끈다. 그런 모습들을  년간 지켜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제주는 그렇게 가벼운 콘텐츠만 있는  아닌데 쉽게 소비되는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이 말하는 제주 감성은 내가 살면서 피부로 느껴본 것들이 아니라, 매체에서 보이는 이미지 속에서 억지로  맞춘 인조적인 것들이었다. 특히, 제주 감성 카페라고 하는 곳들이 나오면 더욱 거부감이 생겼다. 대부분의 그러한 곳들은 제주를 깊게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영화  판타지로 만든, 거주민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한 그저 인스타그램에 피드 구도에 적합한 사진 명소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퇴사를 하고 자전거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에게 잠식당한 해안도로를 빠져나오고, 자본력은 있으나 일관성이라곤 전혀 없는 식당과 카페를 본체만체하며 지나 정말 우연히 발견했던 카페인데, 들어가자마자 너무나 좋았다. 잡음 없이 조용하고, 빛이 그대로 들어오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카페였다. 자전거 여행 첫날, 안장통이 심해 고생하고 있던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았던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를 먹으며 에너지를 충전했던 기억과, 그날의 빛의 감도, 지나가던 올레꾼과의 간단한 대화 등 모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친구에게 좋은 카페가 생각났다며 다시 방문했다.


 분위기도 좋고, 조용하고, 커피도 맛있다며 웃고 떠들고 있던 중 한 남성분이 우리에게 말을 거셨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커튼을 내리면 된다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는데, 그러면서 이 카페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카페와 이 마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사장님은 이 동네 토박이였고, 원래 살던 집을 허물어 카페를 만드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커피를 좋아하셔서 카페를 만들어야겠단 생각을 하다가, 동네를 상징하고 있는 것들과 연관성을 만들어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제주 전통 가옥의 구조로 안거리, 밭거리가 있는데 밭거리를 카페로 만들었고, 해안도로에 즐비한 대형 프랜차이즈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카페의 이름, 내부의 소품 하나하나 모두 저마다의 의미를 다 담고 있어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재밌었다. 또 잠시 쉬었다 가는 손님들을 위해서 시선을 가리는 전깃줄을 건물 뒤편으로 연결시켜,  고민거리를 모두 내려놓고, 멍하니 바다를 보며 힐링할 수 있도록 한 배려도 느껴졌다.


 돌아가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동안 '제주 핫플'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질색팔색하던 내가 원하던 진정한 제주 플레이스였다. 주체를 알 수 없는 미디어들이 만들어낸 허상의 '제주 감성' 담은 곳들이 아닌,  진짜 제주의 삶과 의미를 녹여낸 콘텐츠들이 많아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중요한 요즘, 젊은 꼰대인 내가 추구하는 가치들이 상품성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세계관을 한번 이해하고 나면 제주를  넓고 깊게   있다. 실제로  역시도 30대가 되면서  많이 알고 이해하게 되면서 애정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금씩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내가 그동안 느껴왔던, 외지인과 토박이 사이 절대로 좁혀지지 않을  같았던 간극도 조금은 메워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나같이 애매한 MZ세대는 간세해서(게을러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던 노력들을, 그래도 우리보다  세대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면서도 감사했다.


 어쩔  없이 개인의 커리어를 위해서 일단 섬을 떠나 육지생활을 하고 있지만(언행불일치처럼 보일 수도...), 그래도 언젠가는 돌아갈 나의 고향이  이상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서 쉽게 소비만 돼서 언젠가 외면당하는 콘텐츠로 전락하지 않도록, 항상 관심을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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