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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an 28. 2023

서울에 온 이유

 기상 악화로 항공기가 전면 결항되면서 '내일 비행기는 뜰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도 내심 '내일까지 날씨가 궂었으면 좋겠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안고 잤다. 날씨는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오늘부터 항공기 재개라는 소식을 뉴스로 접하면서 부지런히 짐을 쌌다.


'며칠 만에 1kg이 늘었어...'


나의 부지런함의 척도는 어느새부턴가 내 몸무게가 됐다. 살이 찌고 안 찌고의 문제가 아니라 몸을 부지런히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준이다. 실컷 놀고먹고 자고 한 결과물이라 씁쓸함보다 뿌듯함이 컸다. 정말 잘 쉬다 간단 의미다.


친척들 간 사이가 좋은 우리 집안은 명절마다 빠짐없이 모두 다 모여 저녁까지 신나게 떠들곤 한다. 저녁을 먹고 한, 두 집씩 돌아갈 채비를 할 즈음이면 할머니 할아버지 표정이 조금씩 굳어진다. 모두가 다 떠나도 장남인 아빠 덕에 끝까지 남아 뒷정리를 하다 보면 갑자기 휑해진 집안 공기가 살짝 슬프기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느끼는 허전함은 어련할까.


'아버지 다 가부난 서운하시크라예(아버지, 다 가버리니까 서운하시겠어요)'


 아니라고 말씀하셔도 표정에 여실히 드러나는 서운함은 손녀인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렇게 몇 십 년을  똑같은 레퍼토리로 보내고 있다.


 그리고 서울로 터전을 옮긴 나는, 할아버지 얼굴에서 보았던 그 표정을 이제  엄마, 아빠의 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이번 연휴 동안 꽤 길게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온 세월에 비하면 우리에겐 일주일은 터무니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다음엔 엄마, 아빠가 꼭 서울 와'


  다음에 엄마 아빠가 서울 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자고 혼자 오두방정 떨며 이야기해도 집안의 분위기는 전날 밤 같이 미스터트롯을 보며 깔깔거리던 것과는 너무나 상반됐다. 마음이 약한 나는 마음 한편에 '그냥 나중에 다시 돌아올까'싶다가 도 지난해 굳은 결심을 했을 때의 나의 상황을 다시 상기시키며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사람들에게 고향이란 존재가 다 그렇듯이, 나 역시도 제주에 있으면 모든 게 다 편하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오롯이 나만을 위한 공간, 내 차,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람들, 조금 버겁다고 느껴질 즈음 찾아갈 수 있는, 좋아하는 오름들. 하지만 나는 계속해 원을 그리며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데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지금, 조금 낯선 곳에서 마주하고 있는 나의 일상들은 제주에서 만큼 의 안락함은 보장받지 못하지만, 내가 온전하게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알아갈 수 있는 환경들을 만들어준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우연히 마주하면서,  그렇게 이전보다는 좀 더 속도감 있게 성장하고 있다.


 아직도 서울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명확한 해답을 얻은 건 아니다. 특출 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애매하게 잘하는 것들이 많은 것도 복이라며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각이 안 나오면 정리하고 내려오라고 하지만, 이 시기를 조금 더 견뎌내보고 싶어 당분간은 그럴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예전에 친한 오빠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오르막길이 힘든 건 당연해. 힘들지 않으면 그건 바로 내리막길이야'라고.


 이젠 높은 빌딩숲  어찌 어찌 연명해가는 수많은 회사원 중 한 명으로서, 평범하게 여겨지는 생활을  이어가겠지만,  속에서 내가 지킨 나만의 루틴들을 지켜가며, 어제보다 조금  나아간 오늘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지금 나에겐 성공보다는 성장이 우선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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