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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Feb 02. 2023

정갈한 삶

 '인생 정리가 필요해' 


 27년 지기 친구의 말 한마디로 시작된 서울 근교 당일치기 여행. 카페에 가서 각자 한 해의 계획을 써 내려가며 마음을 다지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우당탕탕, 다사다난했던 2022년을 지나 새해에 접어든 지도 딱 한 달째. 아침에 다졌던 포부가 저녁에 사그라들고, 잠자기 전 복잡했던 마음이 아침에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지독히도 기복이 심한 나날들을 보내는 걸 인지하고 있노라면, 이건 어쩌면 성격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잡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 아이패드를 꺼내 만다라트를 작성해 봤다.


 만다라트는 최종목표를 구심점으로 부수적인 목표들 8개를 작성하고 세부적으로 나누어 이에 대한 계획이나 아이디어들을 확산해 나가는 형태로 만드는 생각정리 방법이다. 친구와 나 둘 다 신나게 떠들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며 정신 차리고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 열심히 써 내려갔다.


 나의 만다라트를 가득 채운 건 먼저 커리어. 방송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업계에 들어와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스스로가 실은 엄청난 관종이라는 걸 서서히 깨달았다. MBTI를 여러 번 해도 나는 I 성향이 나오는데 이와 별개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을 하고 무언가를 전달할 때 희열을 느낀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다. 원래 떨어져 있을 때 각별해지는 것들이 있다는데 그게 방송일이었던 걸 알아차렸다. 사람이 늘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순 없겠지만, 지금 있는 이 업계에서 내가 희열을 느끼는 업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커리어의 방향을 조금씩 써 내려갔더니 착잡했던 마음에 설렘의 감정들이 포개어졌다.


 그리고 가장 힘을 주고 쓴 분야는 '건강한 생활'이었다. 어릴 때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연예인들이 시도한다는 온갖 방법들을 총 동원해 극한의 식단을 짜고, 언제나 관절이 튼튼할거란 자만심을 갖고 무리한 유산소 운동만 하며 그저 '미용 몸무게'에만 집착했다면, 이제 나에겐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내적인 건강, '웰니스(wellness)'가 더 중요해졌다. 한 손 가득 영양제를 챙겨먹지 않더라도, 자연에서 나온 양질의 음식으로 식단을 짜고, 과식하지 않는 습관. 그리고 체지방률에 집착한 유산소운동보다  근력, 자세 교정에 더 신경 쓰고 싶다. 운동이 마음에도 근력을 붙게 한다는 걸 깨달은 후 나의 운동 방향은 완전히 달라졌다. 눈길을 사로잡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은은하게 느껴지는, 우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머릿결, 손톱 등 말단의 trimming에 신경 쓰되 너무 과하지 않고, 예쁜 옷 여러 벌보다는 질 좋고 나에게 잘 맞는(조금 비쌀 수는 있지만) 옷 하나를 오래오래 입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성격상 하고 싶은 게 많고 욕심도 많지만 이번 한 해는 조금은 내려놓고 선택과 집중을 할 계획이다. 평소 배움에 욕심이 많은 나는 이것, 저것 공부해보고 싶다고 신나게 써 내려갔는데 그중 지우고 지워서 남은 것은 딱 세 가지. 중국어, 글쓰기, 블록체인. 애증의 관계라고 느꼈던 중국어는 이제 애정의 비중이 더 켜졌고, 힘들 때마다 텍스트를 보며 위로받다 보니 글이 좋아지며 이곳저곳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쉽게 읽힌다는 피드백을 받을 정도는 되었지만 여전히 엉성한 부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써내려가다보면 조금씩 정제된 나만의 언어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베어마켓에 접어들 무렵 멋도 모르고 입문해 버린 블록체인의 세계에서는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쌓아나가고 누군가에 세 설명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이렇게 신나게 써 내려가다 보니, 연애 칸이 없다. 아무래도 올해도 연애는 글러먹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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