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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Feb 07. 2023

요가 끝에 사바나와 눈물 한 방울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살이 급격하게 찌고 몸이 둔해지니 운동신경이 크게 떨어졌다. 달리기는 항상 뒤에서 1,2등을 다퉜고 고등학생 때까지 체육 시간만 되면 뒤로 숨기 바빴으며, 다리는 반에서 제일 긴데 달리기는 제일 느린 참 답 없는 사람이었다. 이중턱은 나의 트레이드마크였고, 통통하다는 말에 타격감은 있었지만 운동을 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더 다양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을 찾게 됐고, 매일 땀 흘리고 체중계에 올라가, 운동하며 흘린 땀의 양을 마치 칼로리 소모량인 것처럼 착각하며 위로했다.

방송일을 하면서 체중 감량이 필수인 나에게 운동은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방학 마지막 날 밀린 일기들과 같은 존재였다. 조금이라도 몸무게가 증가하면 바로 운동장으로 달려가 5km를 이 악물고 달리기도 했다. 나에게 운동은, 아빠의 살찌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에 대한 업보라고 징징대기도 했다. 


 서울에 와서도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해 운동을 찾던 중, 언제부턴가 여자들의 등근육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위인데, 등과 어깨가 탄탄한 여성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에 눈을 떼지 못했다. '나라고 뭐 못할 게 있어!?  탄탄한 근력을 키워보자'는 생각에 필라테스를 끊었다. 필라테스를 끊었더니 자연스럽게 요가 이용권도 얻게 되면서, 요일에 따라 하고 싶은 운동을 골라서 하게 됐다. 그리고 지금은 요가를 위해 필라테스를 끊게 되는 모호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생각이 많아, 톡 치면 무너질 것 같았던 지난가을 무렵, 요가는 그럼에도 그 시절을 잘 보내게 해준 힘이 됐다. 항상 더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 '그래서 난 뭘 잘하지?'라며 매일 스스로를 몰아세웠던 날들 속에 요가선생님이 '잘하고 있어요'라고 칭찬해 줄 때마다 울컥해진다. 타인의 칭찬에 쉽게 취해선 안된다며 늘 경계하는 나이지만, 느슨한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의 나긋한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는 소소한 격려와 위로의 잔상은 내 마음속에 꽤 오래 머물렀다. 생각지도 못한 내 몸 구석구석을 잘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섬세하게 감각을 느끼고 호흡하면서 나를 알아차리는 연습. 도저히 못할 것 같았던 동작들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시점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나를 마주한 순간의 느껴지는 쾌감. 모든 것들이 좋았다. 오만 가지 생각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어깨 가득 짊어지고 요가원에 가면, 향초와 함께 다 태우고 버려버린다. 그리고  가벼운 발길로 돌아가는 그 기분도 너무 좋았다.



 언젠가 운동은 더 이상 몸의 근력이 아니라 마음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일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등산할 때가 그랬다. 지금은 힘들지만 정상에 도달한 순간 마주하게 되는 아늑한 풍경은 거의 중독과 다름없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어느 순가 무아지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몸을 뒤집고 비틀고 하다 보면 빳빳하게 굳어있던 근육들이 조금씩 풀어지고 가쁘게 쉬던 숨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 지난 주말도 몸을 이리 비틀고 찢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지만 사바나 끝엔 그럼에도 해냈다는 기쁨과, 몸을 짓누르던 압박들을 떨쳐냈다는 해방감에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운동을 꼭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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