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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y 14. 2023

취향을 갖는다는 것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아서

옷에 큰 관심이 없다. 솔직히 말하면 없다기보단, 어려워서 포기한 것 같다. 스스로 미적 감각이 부족하다고 여겨, 화장은 물론 옷도 그리 썩 잘 챙겨 입는 타입이 아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만나 쇼핑을 하더라도 신나게 이 옷 저 옷 둘러보며 몸에 대보는 애들과 달리 가장 먼저 앉을 의자를 찾곤 했다. 그러다가 '어 이거 너랑 어울릴 것 같아'라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스스럼없이 카드를 내어주곤 했다.


 분명 어릴 적엔 취향이 너무 확고해서 엄마가 골치가 아팠다고 한다. 원하는 치마의 레이스와 색깔, 까다로운 따님 덕에 아침부터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데, 한 번은 엄마가 바지를 입히고 유치원에 보내놨더니 다시 혼자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왔다고 한다. 그때 그 일은 유치원 선생님도 수많은 애들을 맡아봤지만 옷이 마음에 안 들어서 갈아입고 온 애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할 정도로 스타일의 기준이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어릴 적 사진만 보더라도 기를 쓰고 공주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애 마냥 화려한 스타일을 고수했던 걸 보면, 금쪽이까진 아니지만 육아 난도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거울 앞에서 몇 시간을 서 있어도 전혀 지치지 않았던, 패셔니스타는 온데간데없고, 성인이 된 이후의 나는 패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좋아하는 취미나, 장소, 책, 종교, 정치 성향 등  등 내적 취향에 대해선 나름 어느 정도 굳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외적 취향을 만드는 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나아진 게 있다면 '옷 색깔'에 대해선 취향이 생겼다. 기상캐스터로 일할 당시, CG작업을 위해 블루스크린 앞에 서야 했기에 파란색 옷을 피했어야 했다. 그래서 옷을 고를 때마다 작은 꽃무늬에도 혹여나 파란색이 섞여 있을지 세세하게 따져봐야 했는데, 그때의 서러움이 남아있는지 파란색 옷을 좋아하게 됐다. 그것 말고는 스타일이라던가 좋아하는 브랜드라거나 그런 건 전혀 없다. '엄마는 TV에 나오는 애가 예쁘게 하고 다녀야지'라고 말하지만 뭔가 내가 하면 너무 과하단 느낌이 들 때도 많아서 애매하게 할 바엔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남들이 예쁘다고 하는 옷을 입었을 때도 생각보다 별로라 실망한 기억들과, 예쁘다고 생각했던 옷을 입었을 때 안 어울린단 얘기를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켜켜이 쌓여 차라리 관심을 두지 않는 게 낫겠단 결론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 


 해진 옷들을 정리하고 새 옷들을 사면서도 고민이 많았다. 귀찮지만, 적어도 창피는 당하지 않기 위해 무난하면서 실패하지 않은 옷들을 사기 위해서 내가 사용하는 방법은 각 쇼핑몰 사이트마다 '판매량 순'이나 '리뷰 많은 순'으로 필터링을 하는 것이다. 남들이 많이 사고 입는다는 건 그만큼 실패 확률도 낮고 어느 정도 검증된 것이니까. 그렇게 봄 옷을 몇 벌 샀다. 


 지난 한 주간 새로 산 봄 옷 세 벌을 개시했는데 충격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첫째 날 출근길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만 두 명을 본 것이다.(정확하게 로고와 색깔까지 일치했다.) 둘째 날에 입고 간 옷을 본 회사 동료는 '요즘 이 옷 진짜 많이 입더라. 되게 많이 봤어'라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바로 어제, 지하철을 탔는데 바로 옆 자리에 앉은 사람과 같은 옷이었다. 누가 보면 트윈룩인 줄 알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했고, 사람들의 눈길도 살짝 의식됐다. 심지어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하던 찰나 동시에 일어나길래 무안한 나머지, 가방을 뒤지는 척하며 일부러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내 눈에도 무난한 옷은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무난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내가 느꼈던 당혹감을 저 사람도 느꼈을 것이다. 나처럼 '리뷰 많은 순'으로 필터링을 해서 옷을 골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남들 좋다는 것 사놓고서 당황해하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Simple is the best'라고 핑계를 대곤 했던 나의 스타일링은 simple이 아니라 nothing이었다. 삶에 있어서 확고하게 개인의 취향을 갖고자 노력하는 나이지만 도통 패션에서 만큼은 갖지 못했데 이번 한 주의 경험을 통해서 외적 취향을 갖는 것도 생각보다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


  만나는 사람들 한 테마다 나는 단발이 괜찮은 것 같냐, 긴 머리가 괜찮은 것 같냐고 물어본다. 대답은 제각각이다. 그 머리를 하는 주체는 난데 왜 자꾸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게 될까? 실패가 두려워서일까? 그냥 내가 좋으면 좋은 거 지하며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밀고 나가는 용기도 필요한 것 같다.


 스타일링엔 용기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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