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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May 01. 2023

다시 생일 알림을 켰습니다.

이젠 충분히 축하받고 즐겨도 되지 않을까요?

 학창 시절, 늘 첫 중간고사 시기에 걸려 있던 나의 생일

'너 오늘 생일이구나~ 시험 끝나고 파티하자!'

 친구들과, 가족들은 늘 이렇게 말하며 지나갔지만 제대로 지켜졌던 적이 없었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크게 의미를 부여했던 터라 실망감이 많았던 것 같다. 


시험에서 벗어나는 성인이 되고 나면 조금 달라지겠지 싶었는데 역시나였다. 대학교 1학년,  공교롭게도 생일날 자퇴를 했고, 그 이후로 방황기를 거치면서 생일에 누구를 만나는 게 참 부담스러웠다. 특별한 사람을 만나야만 할 것 같은 날, 누구를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고 생일 당일의 만남이 친밀함의 척도라고 생각하면 상대방도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단 생각 때문이었다. 


 생일이 오는 4월이 너무 싫었다. 외면하고 싶었던 나의 인간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날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들어갈까 말까 한 어플에서 조차 생일축하한다고 알람이 오는데, 정작 축하받고 싶었던 사람들에겐 감감무소식이었던 적도 있었다. 실망이 컸다는 건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울에 오고, 많은 일을 겪고 나서  '이젠 생일을 좀 즐겨보자'라는 태도로 바꾼 건 아마 나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사귀고, 또 내 주변에 많지는 않지만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확신을 가진 순간부터 이젠 충분히 축하받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껐던 카카오톡 생일 알림을 켰다.


 아침부터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받았다. 몇 번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도 온 축하 메시지에 '참 다정한 사람이구나'라는 포근함을 느꼈다. 사소한 배려에서 사람들의 매력을 느꼈다. 26년 오랜 단짝과 드라이브도 하고 부모님이 용돈도 주셨다. 조카와 기분 좋은 영상통화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강의를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좋은 기운을 얻었다. 날씨는 살짝 추웠지만 넉넉한 마음들 사이로 온기를 느꼈다. 화려하진 않지만 넉넉한 생일이었다.


 남에게 보이는 것들이 중요했던 어린 시절 TV나 SNS상에서 거한 생일파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많이 비교가 되었던 것 같다. 특히 겹치는 사람들이 많아 상대적인 박탈감을 더 느꼈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을 겨우 넘긴 지금, 세상엔 다양한 모양의 행복이 있음을 알게 됐다. 나는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지만 농도가 짙은 색깔이 칠해져 있는 원형 모양의 행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행복을 잘 누렸던 생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더라도, 값비싼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나에게 맞는 행복감을 잘 충족했던 생일이었다.


 happy birthday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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