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베이스원의 데뷔를 축하합니다.
지독하게 엠넷의 아이돌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한 프로듀스 101부터 시작해서 보이즈플래닛까지, 아이돌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닌데도 이런 프로그램들은 그 누구보다 진심으로 챙겨본다. 방송국이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은 대중의 어떤 감정을 건드렸을 때 쉽게 넘어오는지 너무 잘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아주 대중의 표본에서도 정 가운데에 있는 사람으로서, 지갑까지 열진 않더라도 감정과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아마 심리학책이나 커뮤니케이션 관련 책에 나 같은 사람들을 겨냥할 수 있는 이론들이 넘쳐나게 있을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너무도 각박한 이 세상에 누구보다 데뷔라는 목표를 가지고 땀 흘리며 연습하고, 불특정 다수의 선택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의 혹독함을 성인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일찍 알려주는 건 아닐까 싶은 걱정에서부터,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노력한 만큼 잘됐으면 하는 과몰입이 나를 진성의 이모팬(?)으로 만든다. 아마 20대 중반 취업 전선에 들어섰을 때 공감되는 포인트들이 많아서였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심을 다해 보게 된다. 모두가 잘 됐으면 좋겠지만 합격할 수 있는 자리와 인원은 이미 정해져 있고, 실력 외에도 여러 가지 요소가 합격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이 참 닮아있다. 떨어지게 되더라도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졌습니다.'가 아닌 '이번 기회는 저희와 맞지 않게 되었네요'라며 스스로 납득하기 어려운 모호한 이유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은 참 씁쓸한 취업의 현실과 맞닿아있다.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연습생들을 보면서 괜히 자극을 받는다. 나도 저렇게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적이 있었을까? 띠동갑도 더 되는 아이들을 보면서 반성하게 된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건 연습실에서 땀 흘리며 연습한 나머지 카메라와 모든 면에 붙어 있던 거울에 김이 뿌옇게 서린 장면인데, 그럼에도 웃으면서 연습을 이어가는 연습생들을 보면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잘 되길 기도했다.
방송이 끝나 데뷔 멤버들이 정해지면서 한동안 관심이 시들해졌다. 스타크리에이터(프로듀스 101에서 국민 프로듀서와 같은, 투표할 수 있는 시청자를 의미한다.)의 역할을 다 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던 중 이번 주 데뷔한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무대와 각종 예능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그전보다 훨씬 성장한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보면서 괜히 뭉클했다. 이들에겐 이제 시작이구나, 잠도 줄여가며 열심히 연습했던 그 기간들을 견뎌내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했다. 나의 성장을 위해 달려가던 시기에 이렇게 예쁜 친구들은 그보다 더 한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며 준비했을 텐데, 그런 노력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요즘은 세븐틴이나 제로베이스원, 르세라핌 같은 아이돌을 보면서 오히려 삶의 의욕을 많이 얻는다. 그들의 노래나 춤을 보면 단지 어릴 적 예쁜 외모와 제스처에 환호하게 되는 아이돌을 넘어서 무대를 위해 모든 걸 갈아 놓은 아티스트의 모습은 넋을 놓고 바라보게 만든다. 좋아하는 일 즐기면서 하는 걸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자신을 갈아놓은 것만 같은 아이돌들의 무대는 시청자인 나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팬활동은 하지 않지만, 더 승승장구했으면 하는 마음에 유튜브 조회수 늘리기에 일조하고 나름의 열심히 스트리밍도 해본다.
제로베이스원의 데뷔를 축하하며.. 이모 팬은 조용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