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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l 17. 2023

반대로 걸어가는 용기

열심히 출근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어쩌다 보니 오피스 건물들이 즐비한 선릉역 일대에 살고 있다. 집과 일터가 가까워야 한단 생각이 들던 찰나, 생각보다 좋은 조건으로 구하게 되었는데 일을 그만두고 나니 사실 이 일대에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지긴 했다. 그래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같이 발맞춰 걷는 것만으로도 갓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주말에는 인구가 평일의 10분의 1로 줄어들어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야말로 워라밸이 완벽한 동네다. 


 요즘의 일과는 새벽운동을 마치고 나와 책을 읽거나, 종종 들어오는 강의나 행사를 준비하거나, 저녁에 중국어학원에 가는 정도다. 사실 백수라고 하기엔 뭔가를 계속하고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불안해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아침에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순간이다. 출근길 지하철 역 입구는 마치 사람들을 뱉어내듯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나는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 역을 향해 들어간다.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나 자신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 멜랑꼴리한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처음엔 이 느낌이 무엇인지 감이 잘 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엔 희열이 되었다가, 또 어떨 때는 두려워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우울해지기도 했다.


 지나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잘 추스르고 힘차게 내딛으려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 퇴사를 질러버렸으니 달라지는 건 없단 사실을 인정해야하기에 늘 나는 용기를 내고 있다.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지만 나 혼자서도 '괜찮아, 기죽지 말고 오늘도 힘내자'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사람들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목적지는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도서관이나, 한적한 카페. 지금은 정 반대의 방향이지만 결국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의 목적지는 같다. 행복한 삶,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삶. 그 속에서 만족감을 얻는 것까지. 지금 당장 다르다는 것에 주눅 들지 말고 그냥 묵묵하게 걸어가야지 오늘도 다짐해 본다.


 근데 요즘 장마 때문에 그런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이 더 외롭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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