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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l 18. 2023

  장마

장마는 도대체 언제 끝이 날까요?

  어릴 땐 비 오는 날이 마냥 좋았다. 창 너머 내리는 빗줄기들을 바라보며 공상에 빠지곤 했다. 어떨 때 빗소리는 자장가가 되어주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 갑작스러운 비에 엄마가 학교 앞까지 나와 우산을 들고 기다리던 장면은 아직도 내게 포근하게 남아있다. 비 오는 날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파란색의 우산으로 취향을 뽐낸다는 은근한 허세도 있다. 오히려 맑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을 기다리기도 할 정도로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올해 마주하게 되는 비는 결코 달갑지만은 않다. 습도가 온몸을 짓누르는 게 크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비가 오는 날에 관절이 쑤시다는 어른들의 말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이라고 하는데, 팔목과 발목이 쑤시고, 종일 찌뿌둥한 게 자도 자도 개운하지가 않다. 제습기로도 해결되지 않는 이 습기와의 싸움은 사람의 진을 야금야금 빼놓는다. 정신 차리자고 펜을 들어 노트에 글을 적으려고 하면 평소보다 눅눅해진 종이의 질감 때문에 이내 다시 집어넣고 에라 모르겠다 싶어 누워버리고 만다.


 햇빛을 보지 못하는 날들만큼 사람들과의 만남도 줄었다. 햇빛을 받아야 활력을 내뿜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활력이 없으니 사람을 만날 에너지가 없었다. 사실 이 타이밍을 이용해 철저하게 고립된 시간들을 가지고자 했는데, 막상 혼자 있다 보니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머릿속에 부유하는 단어들은 쉴 새 없이 넘쳐나는데 막상 정리하려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몰라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끝맺음을 짓지 못하고 내일로 미룬다. 정리되지 않는 생각의 조각들과 습도의 압박으로 약간의 무기력함이 찾아오고 있는 요즘,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결론을 내린다. 아무리 애써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고, 나는 그저 내맡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은 장마도 끝이 나고 머릿속의 온갖 잡음도 언젠간 잠잠해질 거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감정도 곡선을 그리며 나아간다는 걸 그 간의 경험을 통해서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다. 애써 밝아야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이 순간의 느낌들을 잘 알아차리고 기억해서, '지난 장마기간에 난 이런 생각들을 했었지.' 하며 웃으며 회고할 수 있는 날들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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