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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Jul 22. 2023

도서관에 갑니다.  

  책 속에 파묻히며 살았던 지난 한 달.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건 20대 중반쯤부터였던 것 같다. 당시 아나운서 준비를 하러 서울에 올라왔을 때 불안한 미래와 이별, 가족 없는 서러움 속에서 온전히 견뎌내기가 버거웠다. 그 당시 힘들어하는 나를 보던 친구는 한 에세이 책을 소개해줬고 '책으로 위로받는 게 이런 거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마음이 울적한 날엔 도서관으로 향했다.  학생 때나 이렇게 열심히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도 싶지만…


 에세이를 통해 나보다 더 성숙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걸 즐기다가, 성장에 목마를 무렵 자기 계발서들을 탐독하며 마치 나도 될 수 있을 것 같단 희망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삶이 답답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무렵 나의 손은 쇼펜하우어의 책까지 뻗어나갔다. 아무리 인생에 정답은 없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행복이란 모호한 단어에도 일정 범주는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로 이 책 저 책 찾아보았다. 명쾌한 해답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제보단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일을 그만두고 재정비의 시간을 갖기로 다짐한 한 달 동안 도서관을 열심히 다녔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엔 커피를 들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떤 날은 도곡동으로, 날이 좋은 날엔 일원동으로, 중국어학원을 가는 날엔 역삼동으로 매일매일 도서관을 고르는 재미도 있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갔다기 보단 활자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여름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부터, 부단히 살아가야만 살아남는 정글 같은 현실에서 살짝 벗어나 여유 있게 자연광을 받으며 책을 읽어내리는 시간을 가지며 '아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며 스스로를 토닥이곤 했다.


걱정인형을 늘 안고 살아온 나이기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이 불쑥 엄습하기도 하지만, 도서관에서만큼은 잠시 걱정을 미뤄두고 오로지 활자에만 집중한다. 모든 답은 책에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인생 길게 봤을 때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다고 책을 통해서 어떤 금전적인 효과라던가,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기보단 삶의 토대를 다지고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늘 불안하고 걱정만 많았던 20대의 나를 돌아보고, 정말 잘 살아보고 싶어 선택한, 책 속에 파묻혀 살아가는 이 시간. 이번 여름 지독한 장마 속에서도 푸른 여름 냄새가 더 기억에 남게 되는 건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에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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