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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Aug 01. 2023

경청보다 중요한 것

나도 말하고 싶습니다.

 모임에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면 과거 방송인이었던 경력 때문이지, 화려한 언변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거나, 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말의 지분을 많이 가져갈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는 입을 잘 열지 않는다. 오히려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인터뷰를 하거나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 나는 그저 주인공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돕는 역할에 충실했기에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불필요한 말들은 최대한 눌러냈다. '경청'은 진행자의 기본 자질이란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늘 상대방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잘 들어주며 적절한 제스처나 꼬리 질문들을 통해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가끔 재미를 살린답시고 이야기가 어쩌다가 내 쪽으로 끌려온다면 슬쩍 눈치 보면서 얼른 흐름을 제 자리로 데려놓아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의 장점은 뭐냐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경청'을 꼽겠다고 다짐했다.(실제로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 고도의 정신력과 집중이 요구되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기에 스스로 유별난 장점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일하던 동료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서하 씨는 잘 들어주는데, 정말 내 얘기를 듣고 있는 건지 궁금해질 때가 종종 있어."


 경청이 장점이라고 자부하던 나에겐 충격이었다. 그래도 나름 적극적으로 듣고, 알맞은 타이밍에 반응을 보이며 리액션도 썩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여기서 더 오버를 해야 하는 건가?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 저 열심히 듣고 다시 상기할 때 눈을 굴리는 습관이 있는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네요."


" 아니, 그냥 서하 씨 이야기를 해요. 둘이 대화하는데 나만 말하면, 괜히 집 가는 길에 찝찝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그 사이에서 막힘없이 흐름이 이어져야 하는데, 내가 늘 참여했던 대화는 한 방향으로만 직진하면서 뚝뚝 끊겼다. 세상엔 항상 말하기만을, 그리고 듣기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그렇다고 정해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파워 I예요'라며 사람과의 만남을 한동안 피했던 것도 결국엔 청자의 역할만 하다 보니 돌아가는 길에 남겨진 공허함 때문이었음을,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단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친구나 연인 사이에 '티키타카'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 축구 전술 중 하나로, 원래는 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한다는 뜻이다. 서로 죽이 잘 맞고 대화의 핑퐁이 잘 이루어지는 사람들끼리 '우린 티키타카가 잘 맞는다'라고 말한다.  대화에 있어 단지 듣고 피상적인 리액션만 반복하는 것보다 '티키타카'가 잘 되는 게 건강한 대화 방식이다. 대화의 비율은 상대와 나가 각각 절반씩 동일하게 가져가야 한다. 균형 잡힌 대화를 통해 서로가 소통하고 있음을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꽤나 관종이었고 내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날들이 많았다. 덜어내고 덜어내다 보니 그릇에 남아있는 말의 양은 현저히 적어졌었다. 그래도 대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즐거웠단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오래 만남을 이어갈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온전한 나의 말 한마디라도 내뱉어야 했다. 분명한 건 시간이 조금 지나 상대와 내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기를 바랄 것이다. 단지 묵묵하게 들어준다는 것이 결코 상대를 위한 게 아님을 이제야 알아챈다.


 요즘 나의 목표는, 대화의 지분을 정확이 1/n으로 나눠 내 그릇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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