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oha Aug 06. 2023

호구 부작용

무례한 사람에게 착하다는 소릴 듣는다면 멍청하단 뜻입니다.

 착한 게 미덕이라고 여겨왔다. 사회에서 만난, 나보다 나이가 어린 분들이나 친구들에게도 라테를 시전 하려 들지도 않고, 최대한 다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상대의 감정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표현 방법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무례한 사람들을 대할 때 받았던 상처들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나는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라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들을 실천해 내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무례함을 솔직함이라고 둔갑하며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을 볼 때 더 절실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오히려 강압적이고, 무례한 사람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져간다. 다정하고 묵묵하게 제 일을 했던 어른들은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도 여전히 같은 위치에 서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더 많은 특권을 누린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할 때부터 나는 부당한 대우도 그냥 다 하는 것이겠거니 하며 묵묵하게 일했다. 나름의 자리에서 노력했고, 무례한 사람들에게도 최대한 친절했다. '쟤는 너무 착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감사함은 차치하고 진심으로 나를 위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건, 결국 지쳐 떨어져 나간 후에 서야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 친절이 결국 나를 호구로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겸손함이 미덕이라 여기며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실례지만'이란 말을 쿠션어처럼 사용했었다. 상대방에게 불편한 말을 해야 할 때는 울상인 표정부터 짓는다. 카톡에도 'ㅜ', 'ㅠㅠ'를 말 끝마다 붙이거나 우는 이모티콘을 추가한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늘 뭐가 그렇게 죄송했을까. 마음에도 없는 겸손의 쿠션어들이 나를 더 낮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있다는 건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서야 알게 되었다.


 최근에 들어선 이런 단어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는다. 말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기에 정말로 죄송한 상황이 아닌 이상 불필요한 쿠션어를 넣지 않는다. 부탁할 때도 서론을 길게 늘여놓지 않는다. 용건만 간단하게, 그렇다고 너무 무례하지 않게 정확한 이유를 들어 말하려 노력한다. 대신 명령어나 꼰대 말투를 쓰고 있진 않는지 체크하며 무례함은 늘 경계한다. 대화할 때 이런 철칙들을 조금씩 지켜가다 보니, 그동안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피하던 내가 대화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늘 대화를 할 때 아래에서 상대를 올려준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동등한 관계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남을 스스로 느낀다. 


 호구가 되지 않으면서도 건강한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건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에 따라서도 많이 바뀔 수 있음을 알았다. '조금 더 어릴 때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지금에서라도 호구가 되지 않는 말습관을 장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경청보다 중요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