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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Aug 12. 2023

태풍보다 사람이 더 무서워

 태풍 카눈으로 다들 촉각을 곤두세웠던 한 주였다. 작년 이 맘 때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남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던 무시무시한 기억 때문인지 여느 때보다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만연했고, 혼자 사는 나의 안부를 묻는 지인들의 걱정 또한 끊이지 않았다. 사실 태풍의 길목인 제주에서 무려 30년 동안 살아 단련되어 온 탓인지, 태풍은 그저 나에게 연례행사와도 같았다. 특히 기상캐스터의 짬밥이 있다 보니 태풍의 강도와 경로를 보면 대충 어느 정도의 세기일 것 같단 판단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나 보다. 기상청에서 시시각각 보도하는 경로를 보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결과가 어떻든 일단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태평하게 있는 나를 타이르지만 내 예감은 대체로 틀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태풍보다 더 무서웠던 건 연일 보도되는 '칼부림 예고'였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난무하면서 요즘 밖으로 외출하기가 참 겁났다. 길을 걸을 때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무서워 땅을 보고 걷는 날이 많았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거슬릴 수도 있을 거란 공포심이 자꾸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걸을 때 사람들의 발걸음 속도에도 괜히 예민해지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심장이 쿵쿵거렸다. 


 인류애가 정말 바닥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나다가도 동시에 미안함도 들었다. 엄한 사람을 괜히 의심하고, 사람들의 선의도 무조건 거절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꼭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다. 조심해선 나쁠 게 없다며 종일 날을 세우고 있었다. 오늘도 친구와 만나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 살짝 취기 있는 사람이 옆에 앉았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아이폰 긴급 통화 버튼'을 폭풍 검색해 보고, 허공을 보는 앞사람을 간절하게 쳐다보며 옆에 앉은 취객을 눈빛으로 가리키며 혹시 모를 상황에을 대비해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술에 취해 휘청거렸을 뿐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참 피로감이 들었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되어버렸을까? 개인이냐, 사회냐 하며 잘잘못을 따지기 보단 지금 이렇게 모든 걸 다 의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슬프다. 집으로 가는 길, 마음이 복잡해지며 갑자기 힘이 쭉 빠졌다. 그러면서도 이런 나약한 모습조차 누군가에게 타깃이 될 수 있단 걱정이 스치며 다시 정신을 붙잡고 당당한 척하며 집으로 향했다. 

 

 침체된 사회의 분위기와 오랜 기간 이어진 장마, 그리고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쳐있다. 얼른 이 시기가 지나갔으면 좋겠다. 마치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태풍은 거대한 힘을 내뿜으며 한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혼탁해진 대기와 바닷속을 한번 정화시키고 온도를 조절해 주며 깨끗하고 맑게 만들어주는 긍정적인 작용도 한다. 지금처럼 흉흉한 분위기 속, 무시무시한 펜듈럼이 지나가고 다시 서로에 대한 경계를 조금 더 느슨하게 풀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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