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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Oct 29. 2023

일요일 새벽, 절간에 가는 이유.

 20대를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한 번도 쉬웠던 적이 없었는데, 그걸 뛰어넘는 힘든 시기가 바로 작년이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이 있었는데, 감정적으로, 일적으로,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쉽게 터놓지 못했던 건, 나의 부정적 감정이 전염될까 봐였고 오히려 괜찮은 척했다. 하지만 실상은 기댈 곳 하나 없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와장창 무너지는 느낌에 매일 멀미를 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병원이 아닌 절간이었다.


  일 년의 흐름 속에 불교 행사를 하나하나 다 챙겼던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태어났던 나에겐 집안에 반야심경 액자가 있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매해 석가탄신일마다 등을 올리러 가는 건 제사를 챙기는 것과 같았다. 누군가가 종교에 대해 물어본다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불교요!'라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사실 내가 믿는다기 보단 집안이 믿는다기에 당연하게 여겼을 뿐, 내가 혼자 절간에 가서 기도를 하는 등 의식적인 행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힘들 때마다 찾아갔던 석촌호수로도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던 마음의 공허함을 안고 지낼 즈음, 우연히  보았던 '봉은사'가 떠올랐다.  코끝이 시린 겨울 새벽 혼자 봉은사를 찾았었다. 속세의 속세라고 불리는 강남 한복판에 있는 절이라 신기했지만 안에 들어가서 맡은 향 냄새에 온몸의 긴장이 풀렸다. 한 시간 정도 엉엉 울면서 생각정리를 하고 나오면 금세 머리가 맑아졌다. 그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가,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다. 부처님께 제 소원을 들어달라는 애원보단 스스로에게 힘든 시기는 금방 지나갈 거라고 많이 다독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조금씩 안정이 찾아왔고, 사소한 것에도 만족할 수 있는 마음속 틈이 생겨났다. 그렇게 다독임 속에서 조금씩 성장한 나는 당시의 기억들을 곱씹으며 지금도 빠지지 않고 주말 새벽마다 절간에 간다. 

  

 요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밀고 있는 말이 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아'.  


 기댈 구석이 생겨서 일수도 있고, 그런 믿음 때문에 생겨난 확신들이 이젠 나를 지탱해주고 있어서 사소한 것에도 만족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많이 단단해진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에너지도 제법 찼고, 바쁘게 일하면서 스스로에게 보상을 줄 수 있는 센스도 생겼다. 어떤 종교가 중요하다기 보단, 그렇게 믿고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자체가 큰 위로가 되었나보다. 아마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그렇게 절을 열심히 다녔던 것도,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에서 비롯되는 힘을 일찍이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예불문도 반야심경도 모두 한글로 번역해서 읽던데, 시간이 되면 한번 외워보고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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