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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Nov 12. 2023

 겨울의 단상

 정신없이 매일을 살아가면서도 틈틈히 날짜를 체크하며 시간의 흐름을 머리에 익히려고 애써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절의 시간은 조금 더 앞섰고, 11월 초순부터 '겨울'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섰는데,  피부로도 겨울이 왔음을 느낄 정도로 공기는 제법 차가워졌다. 길거리의 붕어빵은 이미 한 마리 1000원을 돌파하며 어마무시한 물가를 실감하게 하고, 무엇보다 수족냉증이 시작된 것은 확실한 겨울의 증표다. 아무리 전기장판을 세게 틀어도 전혀 데워지지 않는 발을 견뎌내는 것부터 시작해, 추위와 고독 등등 감정적인 것들까지 견뎌내야 하는 계절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겨울을 사랑한다. 불교 신자이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누구보다 설렌다. 아빠에게 마지막으로 선물 받은 크리스마스 오르골은 나의 보물 1호이고, 크리스마스에 제법 어울릴듯한 초록색 체크무늬의 테이블 보를 펼쳐놓고 따뜻한 뱅쇼를 마시는 아늑한 공간에서의 나를 종종 상상해 본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가족, 친구들처럼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까지 더해진다. 극한의 추위다 보니 사소한 것에 온기를 느끼게 되고 마음이 제법 넉넉해지는 계절이 되었다.


 올 겨울에도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전기장판 틀어놓고 보는 드라마 시리즈나, 길거리 어묵, 겨울에 읽으려고 미뤄뒀던 책들, 그리고 핫팩을 건네면서 추위를 같이 공유하는 사람들도. 최근 한 작가의 글이 깨나 인상적이었는데 '미워할 바엔 그냥 사랑해 버린다.'는 내용이었다. 멘도롱 또똣한 제주 토박이에게 서울 추위는 충격적으로 버거웠지만, 그럼에도 가장 좋아하는 계절로 바뀐 건 이 추위를 그냥 받아들이자는 태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디 올해도 제발 나쁜 마음 없이 좋은 것들로만 채워가려고 노력하고, 또 그렇게 변해가는 겨울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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