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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ha Nov 18. 2023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10월에 회사에 입사한 이후 부지런히 다녔다. 집안일까지 겹쳐 제주에 다녀올 일도 많았는데, ‘겉으론 비실비실하지만 이래 봬도 체력 왕’이라고 자부하던 나에겐 하나의 성취처럼 느껴졌고, 주변에서 쉬엄쉬엄 하라는 말은 오히려 칭찬으로 다가왔다.매일 새벽마다 운동한 보람이 있다며 으쓱해하던 나에게 결국ㅍ큰 위기(?)가 찾아왔다.


 휴일 아침 일찍 눈을 떠보니 가을비가 촉촉하게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비 맞은 낙엽을 좋아하던 나는 거리도 구경할 겸 또 한 번 도파민을 분출하려 헬스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날은 왜 하필 잘 신지 않던 그 반스 운동화를 신었을까. 헬스장 계단을 내려가던 도중 갑자기 미끄러졌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최근 들어 자주 넘어지곤 했는데 차원이 다른 아픔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던 나는 보통 넘어지면 주변을 살펴서 민망함 먼저 수습하기 바빴는데, 이번엔 그럴 겨를도 없을 정도로 너무 아팠고, 결국 운동을 하지 못한 채 다시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렇게 애꿎은 반스 운동화만 원망하며...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자 병원을 찾았다. 넘어져서 꼬리뼈가 아프다는 말에 의사 선생님은 ‘그냥 타박상 같은데 한번 사진을 찍어보시죠.’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마 내가 웃으면서 말하기에 심각하지 않은 줄 알았나 보다.(아플 때 웃는 게 일류라면서요...) x-ray 사진을 본 의사 선생님은 ’ 생각보다 크게 넘어지셨네요.‘라며 꼬리뼈 골절 진단을 내려주셨다. 전치 8주. 꼬리뼈는 수술이나 약물 주입과 같은 치료가 따로 없고 갈비뼈 부상처럼 자연치유가 되길 기다려야 한단다. 그 누구보다 건강에 자부심이 있던 나에게 전치 8주라는 진단은 깨나 충격적이었다. 아픈 것보다 ’ 앞으로 남은 일정들을 소화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부터 앞섰다.


잘 지내다가도 한번 아프면 갑자기 마음까지 약해져 버리는 또다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서럽다며 찡찡거렸다.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그 친구는  ‘너 너무 달리고 있어서 쉬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라며 위로해 줬다. 만약 꼬리뼈를 다치지 않았더라면 팔다리가 부러지던가 과로로 쓰러졌을 거라는 우스갯소리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스무 살 무렵 친구가 내게 해줬던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을 다시 꺼내어 발음해 봤다. 쉬라는 조상님의 계시였을지도 모르겠다.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게 물리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에너지 차원에서도 필요한데, 상황에 취한 나머지 초반 스퍼트를 너무 내버리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봤다.


 사실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했던지라 어떻게 쉬어야 할지 잘 모른다. 혹시나 모를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강박을 꽤 오랫동안 갖고 지내온 탓인데, 그렇다고 그 대비책이 효율적으로 잘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얻는 거라곤 내면 깊이 스스로 느끼는 든든함 정도다. 아주 개인적인 기준의 든든함이지만 깨나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 주곤 했는데, 지금 이 ‘쉼’이라는 게 숙제로 다가온 느낌이다. 어떻게 쉬어야 잘 쉬는 걸까? 계속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것에 안정감과는 또 다른 결의 안정감을 찾는다는 게 아직은 어렵다.


 주말인 오늘도 일어났더니 새벽 네시 반. 가구들을 모두 천으로 닦고 화장실 청소도 마무리 한 다음 물리치료받고 지금 카페에서 다시 글을 끄적인다. 역시나 누워서 뒹굴뒹굴이 나에게는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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