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현실만큼이나 어둡게 가라앉은 두 주인공의 처절한 삶.. 결코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난 파리의 두 주인공에게 빠져들었다. 라빅과 조앙이 번뇌하며 즐겨마시던 사과주 깔바도스에 대한 호기심도 함께..(당시 사과주스에 소주를 섞어 마셔 보았다가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ㅋ)
라빅과 조앙이 밤새 걸었을 개선문 거리
그래서인지 영화 [미드나잇인 파리]가 나왔을때
큰 기대를 안고 보았다. 영화 오프닝에서 ost <si tu vois ma mere>와 함께 펼쳐지는 파리 시내의 풍경들은 매번 보아도 항상 날 들뜨게 한다. 특히 밤에 길 펜더와 매력적인 여인 아드리아나와의 낭만적인 데이트 장면은 ost <Parlez - moi d'Amour>가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더욱 마음을 푹 젖게 한다.파리는 밤과 낮중 언제가 더 아름다운지 선택하기 어렵다는 아드리아나의 말에, 길은 이에 동의하며 파리는 거리 곳곳이 하나의 예술품이요, 우주에서 가장 핫한 도시라며 예찬한다. 이같은 길의 파리 예찬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이상이 맞지 않던 약혼자 이네즈와 헤어지고 자신이 사랑하는 파리에 남기로 한 길 펜더는 그날 밤 세느강변 다리에서 우연히 예전에 들렀던 노스탤지어 샵의 점원 아가씨 가브리엘을 만나는데, 샵 주인이 콜 포터의 판을 새로 구해 와서 그쪽 생각이 났다는 말에 자신이 콜 포터의 팬인걸 기억해주는 가브리엘에게 크게 호감을 갖게 되고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말한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나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비 오는 파리가 가장 예쁘다는 가브리엘을 기쁘게 반기며 유유히 함께 비 속을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두 사람의 운명 같은 인연의 복선이 깔린다.
영화 [비포썬셋]에서는한 허름한 중고서점에서 (헤밍웨이가 즐겨 이용했다는 100년 전통의 유명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제시와 셀린느가 작가와 독자로 9년 만에 재회하게 되는데, 두 주인공이 서점에서부터 카페를 찾아가는 동안의 거리의 모습이나, 또는 작은 공원을 지나거나 유람선을 타고 센강을 지날 때, 셀린느가 사는 낡은 동네와 아파트의 모습.. 이 영화가 흐르는 내내 두 주인공의 동선을 따라 파리의 곳곳을 엿볼 수 있다.화려하거나 단장된 파리의 명소가 아닌 소공동 뒷골목이나 80년대 명동 거리 같은 소박한 거리들을 지나는데, 파리에 대한 남다른 낭만적 환상을 갖고 있어서일까 일반 파리지앵의 생활이 묻어있을 그런 뒷골목에 왠지 더 호기심이 끌린다.
세느강 유람선위의 제시와 셀린느
제시와 셀린느가 들른 파리시내 한 카페
한 작은 공원 벤치에서
사실 비포 시리즈는 개인적으로 [비포썬라이즈]가 더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예정되지 않은 비엔나에서의 하루.. 20대초반의 풋풋한 러브스토리. 특히 비엔나 곳곳을 다니며 한시도 쉼 없이 나누는 그들의 다양한 대화를 통해 두 젊은이의 서로 다른 철학을 엿보는 재미가 무척 흥미로웠던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