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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Apr 27. 2016

남산 봄소풍

김밥에 사이다가 꼭 함께했던 시절..


제32회 용산초등학교 동창들과의 남산 봄소풍..


얼마 전 밴드를 통해 만난 초등학교 동창들과 옛 추억을 되살려 남산으로 소풍을 다녀왔다.


나의 모교 서울 용산 국민학교(70년대 당시 명칭)에서는 소풍으로 자주 걸어서 남산에 올라갔었다.

남산이 비교적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일 테지만 어린 우리들에겐 꽤 먼 거리였고,

애써 걸어가 남산에 다다랐어도 고생한 보람이봐야 정성껏 싸주신 김밥과 사이다, 초콜릿 등등 간식거리를 맛보는 기쁨이 다였던  같다. 


둥근 돔형의 어린이 회관(현재는 서울교육 연구 정보원)이나 남산타워 따위는 늘 봐오던 거라 그런지 어린 내겐  큰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던  같다. 그나마도 남산타워까지는 멀어서 고학년 때나 딱 한 번 올라갔었던 것 같고 대부분 어린이 회관 옆 야외 음악당 앞에 줄 세워 소집하고 잠시 점심시간을 포함한 자유시간을 갖다가 다시 내려오는 게 당시 소풍의 모습이었던 것 같다.


그 짧은 점심시간도 엄마들이 함께 온 친구들은  좀 더 풍족한 먹을거리와 든든한 바운더리 안에서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막상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조금은 쓸쓸한 시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김밥이라도 싸 올 수 있음 다행인 것이 어떤 친구들의 도시락은 그냥 맨 밥이어서 내 맘이 많이 안쓰러웠던 기억이 있다. 특히 당시 유명했던 '치맛바람' 좀 날리시는 엄마들이 한 곳에 넓게 돗자리를 펴고 선생님들을 대접하는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어린 내 눈에도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소풍 전 날의 설렘은 늘 최고였다. 다섯 형제였던 우리 집의 소풍 가는 날 아침 풍경은 그 어느 집보다 어수선했다.  부모님은 당시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가게에서 일하시는 점원 아저씨들의 몫까지 김밥을 준비하시느라 밥상 위에는 김밥 더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엄마는 다섯 개의 도시락을 펼쳐놓고 연신 예쁘게 썰어진 김밥을 담으시기 바빴다. 우린 양끝에 나온 김밥 꽁지나 터진 김밥으로  아침을 때웠다. 엄마의 김밥은 항상 잘 볶아진 소고기와 다섯 가지 재료가 색색이 들어 있어 그 어느 친구들 김밥보다 맛도 모양도 최고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엄마는 이 많은 김밥을 싸기 위해 밤늦은 시간 가게문을 닫고 준비하시다가 이른 새벽 졸린 몸을 일으켜 서두르셨으리라..


비 예보라도 있는 날에는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따라 비 예보는 너무도 정확해서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은 무심하게도 나의 간절한 기도를  저버리셨고, 우린 교실 바닥에 모여 앉아 준비한 도시락만 까먹고 비 오는 교정을 저벅저벅 걸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살던 동네 용산에서는 어디서든 우뚝 서있는 남산타워가 항상 잘 보였었다. 늘 멀리서 봐오던 남산타워를 코 앞에서 처음 본 기억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그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바로 아래서 올려다본 타워의 끝은 잭과 콩나무의 콩줄기처럼 하늘 끝에 다다라 있는 듯했고, 상상외의 커다란 타워가 작은 내게로 쓰러지는듯한 아찔한 착시가 느껴졌었다.



그랬던 남산을 쉰이 넘어 그때의 친구들과 함께 다시 오니.. 의외의 향수가 정겹게 밀어온다.



소풍은 초등학교 때와 같이 학교에서 모여 출발하였다.

4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모교는 그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어 많이 아쉬웠다.


당시 나의 모교는 100m 달리기가 가능했던 꽤 넓은 운동장이 있었다. 운동장이 좁아 100m 달리기 체력검사가 어려웠던 이웃 학교에서는 체력장을 실시하기 위해 우리 학교 운동장을 빌려 치르기도 했었다.


 커다란 공작새 우리를 포함한 동물원에는 화려하게 잘 생긴 공작새를 포함하여 거위, 꿩, 칠면조, 오리와 같은 조류들과 토끼와 같은 작은 동물들을 볼 수가 있었다. 점심시간에 거위에게 인사를 시키면 꿔억꿔억 소리를 내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 주었고, 토끼들에게는 배춧잎 같은 먹이를 주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대운동장과 소운동장 사이의 중앙에는 펜스까지 둘러져 더욱 위엄 있었던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무슨 나무였는지는 아무리 짜내어 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여나 하는 맘에 검색도 해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해 아쉬웠다. 다행히 모교 밴드에 올려진 옛 사진들을 뒤져 가까스로 그 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한 친구의 졸업 사진 한 장을 찾아낸 것은 큰 성과였으나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어 사진 속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빛바랜 사진 속의 겨울나무는  내 기억만큼 위엄 있어 보이지도 않아 좀 겸연스러웠다. 


 아련한 기억속의  학교 중앙에 있던 나무 사진 한 장. 가까스로 발견한 친구의 졸업사진에서..


무엇보다도 용산 국민학교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넓은 야외 수영장이 있었던 것이었다. 주로 여름방학 때 선생님들의 관리하에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이웃 학교 친구들에게도 따로 시간표를 정하여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내가 오랜만에 찾은 모교에 관심을 보이한 친구가 친절하게 날 데리고 다니며 아는 것을 설명해 주었다.

아쉽게도 수업 중이라며 수위의 만류에 운동장 내부를 둘러볼 수 없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예전의 운치는 없는 듯했다.

넓은 운동장의 일부를 넘기고 대신 실내 수영장을 부여받았다며 수영장 건물을 가리키는데..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운동장 반을 떼주고 좁은 장소에 욕심만 꾸역꾸역 채워 넣은 듯 모든 것이 갑갑하고 생뚱맞게 느껴졌다.


삼각지 주변 일대도 그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 탈바꿈해서 많이 당황스럽고 생소했다.


얼마 전 읽은 글에서 유럽의 매력은 도시의 옛 모습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존중하는 유럽인의 태도에서 비되기도 한다는 것에 깊 공감하면서, 눈뜨고 일어나면 변해 있는 마구잡이식 한국의 발전이 반갑지만은 않은 것이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삼각지 고가도로가 철거되어 온전하게 드러나 있는 남산과 남산타워 생각보다 너무 깝게 놓여 있어 놀라웠다. 벚꽃이 막 지고 있던 때라 조금은 아쉬운 분홍빛으로 물든 모습까지 또렷이 보였다.


단장된 남산 둘레길은 라일락 꽃향기가 그득했고..

늦은 벚꽃나무도 마지막 꽃잎들을 온 힘을 다해 기꺼이 피워내주고 있었다.


"너무 예쁘다~~!!"  

감탄을 자아내며 정겨운 동창 친구들과 그렇게 남산 둘레길을 걸어 오르고 내려왔다.


밴드 친구들이 준비한 김밥에 사이다를 곁들인 추억의 맛과 함께 옛 추억을 회상하며 다녀온 남산 봄소풍!!


그것은 단순히 어릴 적 소풍의 추억을 넘어, 쉽게 가져지지 않는 값진 선물이었다. 우연히 꺼내 본 낡은 앨범에서 세월을 거슬러 오래된 사진 속 정지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처럼 짙은 향수를 자아내어 주었다. 잊고 있었던 추억의 물건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기분이 이와 비슷할 까? 뿌듯한 무엇이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남산 둘레길은 늦은 봄에도 향긋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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