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는 나의 자서전이다.
우연히,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정말 우연히 브런치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브런치에 올라온 글들을 흥미롭게 읽다가 공감된 글엔 정성스레 댓글도 남기곤 했다. 웬만한 책보다 더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한 브런치의 글들을 읽으며 마치 신세계를 찾은 양 무척 흥분되었다.
글도 글이지만 이미지나 영상으로 잘 꾸며진 글을 대하면서 누가 이렇게 글을 꾸며주는 걸까 궁금했다. 작가가 직접 꾸몄다고 하기엔 너무 완성도 있게 잘 꾸며져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알았지만 브런치 에디터 기능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이미지나 영상들은 작가가 직접 준비하는 거지만.
브런치의 프롤로그에서처럼 브런치는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이 맞는 거 같다.
그러다가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브런치의 유혹이라도 있었던가? 작가까지는 기대 안해도 내 글을 세상 밖에 내놓을 기회가 주어지는 건가 하는 막연한 희망의 불씨가 내부에서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도 해볼까..?'
카스에 올려 있던 글을 대충 다듬어 글쓰기에 옮기고 적당히 이미지로 꾸미고 나니 보잘것없는 내 글도 브런치에서는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사용이 서투르긴 했어도 브런치의 에디터가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준비한 글을 두근대는 가슴을 다독이며 성급하게 작가 신청 버튼을 누르고 심판을 받는 기분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1~2일 정도 소요될 수 있다더니 채 하루도 지나기 전에 브런치 쪽에서 조심스럽게 결과를 전해주었다. 이번엔 작가님으로 모시지 못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메시지였다. 내 글을 처음으로 심판 받아본 결과이기에 충격이 컸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다음 기회에 다시 도전해 보라는 희망의 여지를 남겨주신 것이다.(그랬던 거 같다)
쉬운 문턱이 아녔음을 깨닫고 씁쓰라니 심판에서 고꾸라진 글을 다시 읽어보니 나름 만족스러웠던 글이 참 허술하고 초라하게 느껴져 부끄러웠다.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쩝...'
한동안은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소심하게 위축되어서는 대단한 작가님들의 글들을 눈팅만 했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잘 쓰여진 글과 화려한 소재로 맵시있게 쓴 글들이 너무 많아 가뜩이나 늘어진 어깨에 더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또 어떤 글은 뭐 별것도 아닌 듯한데 꽤 좋은 반응을 얻는 글도 간혹 있었다.
그러다가 또 무슨 미련이 남았던지 미끄러진 글을 다듬어 수정하고 살도 붙여 보았다. 그리고는 무슨 용기로 재신청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번엔 낭보였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얏호!
뭔가 믿기진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브런치 쪽에선 두 번씩이나 거절시키면 상처를 입히게 될까 우려하며 고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측은해서이든 나름의 기준에 합당해서이든, 어쨌든 브런치에서 내게 글을 쓸 기회를 준 것이다. 호호
11살 때 '소년중앙'(당시 인기있던 어린이잡지)의 부록으로 받은 일기장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다. 단 한 번도 백일장에 나갈 엄두는 내보지 못할 만큼 사실 난 글 쓰는데는 자신도 재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내 감정을 글로 옮기는 일에 충실했었다.
고교시절엔 '진학'이라는 학생잡지의 펜팔을 통해 수십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글쓰기의 꿈을 이어갔다. 한 번 올린 펜팔의 여파로 몇 달간은 정신없이 편지들이 쏟아져 배달되었다. 하루에도 십여 통씩 매일 편지들을 전달해 주시던 우체부 아저씨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초록색의 양장 표지에 자물쇠가 달린 당시 소녀의 일기장엔 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겼었을까?
자신의 일기장에 '키티님'이란 호칭을 붙여 편지 형태로 써 내려간 <안네의 일기>는 한 때 내 일기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난 내 일기장에 노스탈자(nostalgia)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애칭으로 '노'라 부르며 일기를 써내려 갔었다.
노스탈자는 팥죽색의 양장 표지로 되어 있는 꽤 두툼한 노트였는데 20대 초반의 풋풋한 얘기들이 빠짐없이 다 기록되었던 일기장이었다. 남편을 만나기 이전의 나의 역사이므로 25살에 남편을 만나면서, 소심했던 나는 4~5년간의 추억들을 망설이다 이내 아궁이에 한 장 한 장 뜯어 불태워 버렸다. 마음이 쓰라렸다. 그러나 그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나의 미래를 함께할 마지막 인연일거란 확신을 가진 이유도 작용 했을 터이다. 유독 애착이 갔던 일기장이었기 때문에 어디에라도 꽁꽁 숨겨 보관해둘걸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으로 이어지는 동안은 흔하게 쌓이는 업무용 다이어리에 일기를 써 내려갔다.
대 여섯 권의 회색, 또는 검은색 다이어리엔 그 색깔만큼이나 불평 어린 글들이 채워졌을 것이다. (우린 항상 잘 다퉜으므로) 특히 결혼 후엔 더 했다.(솔직히 잘 기억나진 않는다. 안 읽어본 지 너무 오래돼서..ㅎ)
기대와 낙망이 반복되었던 불임과정의 고통도 그 회색 다이어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고로 일기는 행복할 때도 쓰지만 문제가 있을 때 더 쓸 말이 많은 법이다.
행복할 때는 주로 일기보다는 편지를 쓰게 된다. 그래서 연애하는 5년 동안 그에게 보낸 편지들은 그리도 달달했었나 보다.
수십통의 편지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오글거리게 달달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사랑했었구나 하는 마음에 훈훈한 미소가 지어진다.
컴퓨터가 가정에까지 널리 보급된 이후부터는 컴퓨터에 일기를 썼다. 컴퓨터에 서툰 내가, 실수로 몇 일 또는 몇 달간의 소중한 기록들을 날려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 후론 간간히 기록했던 글들을 추려 디스켓에 옮겨 담곤 했다. 한 번은 컴퓨터를 새로 구매하면서 기사의 백업 작업 실수로 그만 십여 년간 써온 일기와 소중한 사진들을 다 날려버리기도 했었다. 그나마 디스켓에 저장해 두었던 일기들이 남아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서 어찌 보면 손글씨로 남긴 노트가 더 안전하기도 하고 또 추억을 다시 꺼내보는 정감도 더 있다.
아기가 생기면서는 베베하우스라는 웹사이트에 따로 육아일기를 써 내려갔다.
일기는 아기가 태어난 직후 산후조리원에서 메모로 끄적이던 것을 옮겨 적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기가 잠든 새벽에 주로 깨어나 일기를 쓰다가 아기가 깨면 컴퓨터 앞에 끌어안고 계속 쓰기도 했었다. 그러다 아기가 내 품에서 옹알이를 하면 바로 받아 타이핑한다.
"인뎨에 에 어 엘라아 으져 즈즈으 네쥐-제 듀떼떼 따두떼..."
실제로 그때 들리는 대로 기록해 두었던 아기의 옹알이다.(아가들의 세계 공통어일텐데.. 받아 적는 것만도 참 어렵다.ㅋ)
그렇게 시작한 육아 일기는 아이가 자라 초등학교 입학 직전까지 이어졌었는데 그 후론 사이트가 폐쇄되어 연락도 안되어서 정말 어렵게 되찾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내 일기의 장은 또 한 번 바뀐다. 폰에 다이어리 앱을 깔고 그 위에 수시로 일기를 썼다. 언제 어디서든 순간의 감정을 글로 옮기는 일이 더 쉬워졌다.
카스를 통해 처음으로 내 글을 공개도 해본다. 친구 수락를 남편과 아들,고모부,고모만으로 제한한 소극적인 공개이긴 하지만..
그러던 중 브런치를 만난 것이다. 브런치는 공개면에서 카스보다는 훨씬 개방적이다. 그래서 글을 쓸 때 좀 더 고민하게 된다.
브런치가 내 삶에 주는 의미는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에 의미로운 인연임엔 틀림없다.
내가 쓴 글의 공개는 조심스레 세상 밖을 두드리는 내 삶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인기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서전과 같은 내 얘기들을 쓰고 싶다. 내 프로필에서처럼 나이가 드니 자신을 알리는 일이 중요해지는거 같다. 그래서 누가 나의 이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읽어줄 것인가엔 연연해하지 않으려 한다. 가급적 기억나는 모든 얘기들을 담아내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나의 자서전을 공개하는 유일한 매개체가 되는 셈이다.
브런치가 내게 주는 좀더 더 현실적인 의미로는, 일단 잘 쓰인 다양한 장르의 글들을 맘껏 읽어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글과 놀라운 솜씨로 촬영된 영상들로 몰랐던 세계를 보여주시는 작가님들, 내 감성을 자극하는 언어와 표현으로 읽는 순간순간 설레게 하시는 작가님들, 생각을 개성있는 그림으로 섬세하게 표현해 내시는 작가님들, 또 나의 이데아를 움직이게 하는 훌륭한 철학이 있으신 작가님들께도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하고 싶다.
"브런치 작가님들 감사합니다~~ 꾸벅.."
브런치는 한 번도 깨어보지 못한 나의 또 다른 감성을 일으켜 깨운다. 정말 짜릿한 기분이다.
중년 여인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는
'숲의 바람'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