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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Nov 09. 2016

내 우울을 다루는 법

난 나를 잘 알아..


근 한 친구를 알게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시험감독으로 나갔다가 동갑내기라고 친밀감을 보이며 다가온 학부모였다. 학부모회장을 연임하고 있던 친구라 안면은 있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사교에 서툰 난 좀 당황스러웠으나 적극적인 이 친구는 거침없이 내게 다가왔다.


그녀와 서로에 대해 이것저것 톡을 하던 중 그 친구가 갑자기 커피 한 잔 하러 나오랬다. 남편이 곧 퇴근할 시간이고 갑작스러워 잠시 망설였으나 마침 아이도 학원에서 늦는 날이고 또 이 친구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 그대로 자전거를 타고 약속한 커피숍으로 나갔다.


그녀는 나보다 먼저 나와 커피숍 테라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조금은 어색하게 반기며 춥다고 안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늘 아메리카노만 시킨다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난 달달한 화이트모카를 마시고 싶었으나 메뉴에 없어 대신 바닐라라떼를 주문했다.

테이블 위에 그녀가 읽고 있던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독일 심리학자 우르술라 누버

잠깐 나보다 남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먼저 책 얘기를 꺼냈다.

그녀는 낮에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갱년기라 간혹 우울하다는 말을 얼핏 꺼내면서 자기가 읽기 위해 빌린 건데 나부터 읽어 보라며 책을 건넨다. 나와 공유하고 싶어 일부러 챙겨 나온 책인 걸 알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책을 받으며 처음 생각했던 말을 솔직하게 꺼냈다. 난 내가 젤 쉽다고.. 항상 남이 젤 어렵다고.


그녀는 아마도 책 제목에 공감하며 책을 빌렸을 터인데 내가 이런 말을 하자 어쩌면 좀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녀는 혼잣말로 '그렇지.. 남이 제일 어렵지..'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는 독일의 심리학자 우르술라 누버가 쓴 책이다. 책 표지에는 30만 여성의 마음을 어루만진 베스트셀러라고 적혀 있었다.


책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의 상담 내용을 토대로, 그림형제의 동화 <룸펠슈틸즈엔Rumpelstilzchen>에 등장하는 방앗간 딸의 상황과 비교해가며 전개하고 있다. 70% 이상이 여러 상황의 상담 사례와 함께 심리분석가나 심리치료사들의 의견을 인용하여 여성의 심리를 세밀히 읽어 내려간다.


난 사실 우울한 여성들의 상황과 동화 <룸펠슈틸즈엔>의 상황 비교가 잘 공감되지 않아 순조롭게 읽히지 않았다. 적절한 해결책 없이 열거하고 있는 우울한 여성들의 사례들은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여성들의 눈물샘을 또 한 번 자극하진 않을까..  여러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어떤 여성들이 우울에 빠지게 되는가를 세세히 기술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칫 그녀들을 자존감이 낮거나 자긍심이 적은 혹은 의존성이 많은 여성으로 스스로를 폄하하여 더 깊은 우울에 빠져들게 하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사례들을 읽으면서 '나도 저런 적이 있었지' '문화가 달라도 세계 여성들의 우울의 원인은 다 똑같구나' '우울한 심리를 참 잘 읽는다' '맘이 답답하다'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후반에 와서 비로소 작가는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다섯 가지 전략을 제시한다. 앞서 신랄하게 기술한 사례들에 비해 제시한 전략은 왠지 좀 빈궁하다.


우선 작가가 제시한 다섯 가지 전략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내 우울의 정체를 파악하라.

둘째,  몸을 움직이면서 적극적인 인간으로 변신할 준비를 하라 

셋째,  주위에 SOS타전을 보내라.

넷째,  내가 나를 위하지 않으면 누가 날 위할 것인가!

다섯째,  만인에게 친절한 나는 지나갔다.


이 다섯 가지 전략에 대한 부연설명과 함께 작가가 우울에 대해 내린 결론은 대충 이런 것이다.


'우울은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인생에는 언제나 우울한 시기가 있음을 인정하고 우울증이 보내는 경고신호를 잘 알아차린다. 이때 두려워 말고 본인의 기분을 더욱 세심히 살피고 분석해서 찾아온 우울을 극복하기 위한 의식적인 행동을 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글쎄.. 앞서 책 표지에 쓰여있는 것처럼 30만의 여성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기에는 이 전략들이 좀 모호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막상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 보니 이 책은 이미 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맞는 듯했다. 무엇보다 책 제목인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에 공감하며 후기를 길게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책 속의 사례자들은 대부분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면서, 막상 사랑을 겪는 과정에서  괴로워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이럴 때 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 나일 때 제일 행복하다.'


이 말은 사실 영화에 나오는 대사이기도 하다.

영화 '비포 썬 셋'에서 셀린느가 제시에게 더 이상 로맨스를 꿈꾸지 않는다며 사랑에 회의를 느끼며 하는 말이다.


 "난 나일 때가 제일 행복해. 혼자라도 상관없어. 누군가 곁에 있으면서 외로운 거보다 낫지."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것만 못할 때 가장 우울해지지 않나 싶다. 이는 비단 여성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나도 때때로 우울에 빠지곤 한다. 그러면서 감히 우울을 벗어나는 방법을 운운하는 것은 사실 매우 조심스럽다.


책의 작가도 언급하듯우울은 몸이 내게 보내는 메시지이며 그 메시지의 정체를 파악해서 대처해야만 극복할 수 있다. 우울은 육체와 정신의 저항과 같은 것이어서 내 마음에서 뭔가를 호소하는 증상이라는 것이다. 이때 이 호소에 귀 기울여 그 의미를 해독하고 이에서 벗어나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내가 나일 때 제일 행복하다'라는 말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남에게 의존적인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만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무언가를 할 때가 가장 내가 나인 모습이다.

내 경우엔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또 영화를 볼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이다. 내가 내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주변의 가족이 나를 존중해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중요한 건 최소한의 내 의무를 다하면서 할 때 존중받을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의무에 소홀하지 않는 것도 내가 명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인 모습이다. 의무를 다할 때 마음은 더욱 가벼워진다. 집안을 정돈하거나 가족의 식사에 정성을 기울이거나 혹은 부모에게 마땅한 도리를 다할 때, 귀찮다고 안 할 때 보다 훨씬 마음의 짐을 덜게 되고 행복의 기운이 도는 걸 항상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건강과 외모를 관리하는 것 또한 내가 나인 모습으로서 꼭 필요한 요소이다. 몸이 병약하거나 자신의 모습이 불만스러울 때도 우울해지기 쉽다. 건강을 위해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거나 때때로 땀 흘리며 격한 운동으로 신체를 단련하고 체중관리도 한다. 또는 차분하게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자신을 관리하는 좋은 방법이 된다. 좋은 음악은 정신의 청정제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마사지나 팩으로  또는 물을 챙겨 마시는 것으로 피부관리를 꾸준히 하고 부지런히 손톱을 가꾸거나  헤어스타일에 정성을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 좀 더 밝고 생기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칠 때 나의 기분은 한결 밝아진다.



작가가 다섯 번째로 제시한 전략에 대해선 좀 더 얘기를 하고 싶다. 


"만인에게 친절한 나는 지나갔다."


이 대목은 그림형제의 동화 <룸펠슈틸즈엔>의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비교가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려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부터 나를 지켜주어야 한다. 자칫 예기치 않은 희생을 초래하며 스스로 우울을 불러들이게 될 수 있다. 내가 함부로 나를 다뤄서는 안 된다.


책 속의 심리분석학자인 프리츠 만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고 싶다면 목소리를 높이도록 허락해야 한다."


이에 대해 작가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나는 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고,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즉, 내가 진정한 나가 되기 위해서는 무리한 요구나 원치 않는 요구에 대해 소신 있게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스트레스를 받고 고민하는 것은 우울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룸펠슈틸즈엔>에서 방앗간 딸이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고민하게 되는 상황과 꼭 같은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또한  예의 차리기식의 행동도 자신의 맘이 불편하고 내키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해 주어야 한다. 예의 차리기의 형식적인 행동은 대체로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고, 괜한 신경을 쓰며 우울을 자초하게 되는 것이다. 형식보다는 마음에 집중하는 태도 또한 내가 좋아하는 '나다운 나'의 모습이다.



이렇게 생활을 잘하다가도 문득 우울은 찾아온다. 그럴 땐 작가가 제시한 세 번째 전략을 실천한다.


친구든 형제든 배우자든, 여의치 않음 의사를 만나서 고민을 드러내고 대화로 해답을 찾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럴 때 SOS를 보낼 수 있는 누군가가 항시 곁에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훨씬 덜 우울할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 우울을 항시 토닥여 줄 수 있는 동생과 남편 또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를 우울에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큰 힘 한 가지는 바로 '가치관'이다.


남의 시선이나 생각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저 부끄럽지 않게 내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


인간은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좀 부족해도 괜찮다는 것.


남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남을 미워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 것.


이러한 가치관이 내 정신을 편안하게 유지시켜주는 가장 큰 힘이 되고 있다.



책 제목처럼 어쩌면 스스로 내가 제일 어렵다고 느낄 때 우울해지기 쉬운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제일 쉽고 나를 잘 알게 되면서 우울에서도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 글이 모든 우울한 여성에게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는 감히 생각지 않는다. 다만 나도 한때 사례와 비슷한 우울을 경험해본 적이 있고 여전히 때때로 우울감을 느끼는 보통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나의 우울 극복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요즘의 내 삶은 우울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우울 대신 행복한 감정이 가슴 안에 차곡차곡 메워져 가는 기분이다.


이 책을 빌려준 내 새 친구가 혹 내게 SOS를 타전 해온다면 진심을 다해 그녀의 마음을 토닥여 주고 싶다.

 




이미지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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