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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서희 Nov 26. 2016

낡은 사랑의 초상

사랑의 기초- 한 남자 / 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한 남자>는 한국 작가 정이현의 <사랑의 기초- 연인들>과 공동 프로젝트로 구상된 소설이다. 정이현의 <연인들> 편이 젊은 연인들이 꿈꾸는 낭만적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는 현실적 연애의 초상이라면, 알랭 드 보통의 <한 남자> 편은 낭만적 사랑의 결정체인 '결혼' 그 이후의 실체를,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인 '한 남자'의 관점에서 써 내려간 책이다.


작가 정이현과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라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동서양의 두 작가에 의해 별개의 독립된 책으로 출간된 점이 흥미롭다. 두 소설 모두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그 사랑의 기초가 우리가 기대하는 로맨스가 아닌 점에선 일치한다.


<사랑의 기초- 한 남자>의 프롤로그에서 정이현 작가가 '이것은 판도라의 상자다' 했을 때, 난 사실 이 책을 여는 것이 두려웠다. 나의 경우에도 결혼의 환상은 신혼 여행지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건만 여전히 그 환상의 끝을 부여잡고 깨고 싶지 않은 의지가 남아 있었나 보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판도라의 상자인지라 두려움을 넘어서는 호기심이 발동하여 열고 싶은 유혹은 더욱 강렬해졌다.



열렬했던 짝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체 엘로이즈와 결혼한 벤은, 20년의 세월을 넘어선 어느 불면의 밤에 페이스북에서 옛사랑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으로 글은 시작된다.


벤은 아내 엘로이즈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며 분명 그때는 사랑이 있었음을 명시한다. 그러나 결혼 이후 한 사람을 계속 사랑하는 일은 무척 힘겨운 일이고 최대의 시련과 맞닥뜨리게 되는 것임을 직시하게 된다.


샤워 후 아내의 풀어헤쳐진 몸에서 벤은 어떤 흥분의 여지도 느끼지 못한다. 마치 누드비치 같은 무덤덤한 분위기가 감돈다 라는 벤의 표현에서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래된 관계에서 더 이상 에로티시즘은 존재하지 않으며, 섹스는 무거운 과제라는 벤의 생각에 가슴 아프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사소한 일로 서로 말꼬리를 잡고 비난하며 순식간에 열분을 터뜨리는 엘로이즈와 벤의 모습은, 과거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남편과 내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결혼의 환상은 충분히 깨진 듯한데, 판도라의 상자 안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충격적인 절망이 더 담겨 있었다. 하긴 이 정도로 굳이 판도라의 상자까지 운운하진 않았겠지만..



벤은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되어 집착적으로 성에 탐닉한다. 심지어 기회가 오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외도를 한다. 물론  이튿날 아침, 그 시각 등교를 서두르고 있을 아이들과 아내를 떠올리며 끔찍한 기분이 들만큼의 도덕적 자책감은 있었다. 


그는 진정 12C 프로방스의 트루바두르(중세 프랑스의 음유시인)나 18C 초, 파리의  리베르탱(분방한 연애를 추구해 탕자의 대명사가된 자유사상가)이고 싶다. 19C 유럽의 두 소설 <보바리 부인>과 <안나 카레리나>에서, 벤은 두 여자의 자살의 의미를 결혼제도의  모순적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 예로 해석한다. 즉 낭만적 사랑과 가정이란 규범은 융화될 수 없는 요소인데  억지로 하나로 묶으려다보니 이러한 모순적 특징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난 처음이 주인공이 많이 불편했고 이건 문화와 정서의 차이다라고 부정했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까지도..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니 이런 벤의 성집착이 내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기혼남들의 자화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얘기일런지는 모르겠으나 난 이 책을 통해 비단 결혼한 남만이 아닌 인간 전체의 성애에 대해 재조명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 가지 다짐을 받았었다. 우리 둘 사이에  다른 여자가 끼어들지 않게 하라는..

그때 이후 이 책을 다 읽는 순간까지도 남편의 외도는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단호히 생각했었다.

이튿날 센터에서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울러 퍼지는 나나무스쿠리의 'Plaisir d'amor(7일간의 사랑의 ost)'를 듣기 전까지는..


영화 <7일간의 사랑(1988)>에서 영문학 교수였던 로버트는 10년 전 세미나차 프랑스에 다가, 사소한 사고로 치료를 받던 중 여의사 니콜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7일간의 짧은 사랑이었지만 저녁놀이 붉게 넘실대는 바닷속의 두 연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가 온전하게 가정적인 남편이었고 여전히 두 딸의 자상한 아빠임에 틀림없지만, 그런 그도 한 순간의 욕정에 무너진 '한 남자'이었다.

내와 두 딸의 상처를 공감하면서도 우리의 마음은 로버트의 사랑에 얼마나 더 공감의 무게를 실었고 감동하며 이 불륜에 빠져 들었던가! 

전 세계 기혼 여성의 맘을 뒤흔든 영화 <메디슨 카운트의 다리>에서는 또 어땠는가!

우연히 다가온 운명적 사랑엔 남녀가 불문했다.


돌연 단순한 성적 충동이 아닌 운명 같은 사랑이 남편에게 찾아온다면, 정말 쉽지 않겠지만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도 이런 갑작스러운 생각의 변화가 놀라웠다. 그것이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변하는 것과는 별개의 의미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심지어는 그것이 아름답게까지 느껴지게 될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마저 들어버렸다.


그 주 일요일 오후, 가까운 가을 숲 벤치에 앉아 남편에게 물었다. 만약 내가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인정해줄 수 있겠느냐고..

뜬금없는 내 질문에 남편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면서도 의외로 막을 수 없다고 순순히 인정한다. 다만 가족들이 알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인다.

인정은 하지만 맘속 깊은 곳에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두려워하는 남편의 모습이 내 마음과 같았다.


"내가 운명같은 사랑을 만나게 된다면 인정해줄 수 있어?"


이 책에서 보여주는 낡은 사랑의 초상이 자칫 암울하게 비춰질 수도 있지만 독자들에게 이것이 좀 더 성숙하고 희망적인 답이 되길 바란다는 알랭 드 보통의 바람 그대로, 작가 보통의 철학은 철통 같은 보수적인 내 생각을 뒤바꾸었고 성애에 대해서 좀 더 열리고 한층 성숙해진 답을 얻은 듯싶다.


난 판도라의 상자에 남겨진 마지막 희망, 어쩌면 다 흩어진 절망들(결혼의 환상을 깨뜨린) 그 이면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러한 나의 사고의 전환이 오히려 무거웠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남편과 자주 산책하는 오솔길, 길 끝에 가벼운 희망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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