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그레이의 처형 - 폴 들라로슈(1797~1856)
런던 미술관 산책(2010) -전원경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만났다. 친구가 봉사하고 있는 노인복지회관 도서관에 들렀다가 책 제목이 눈에 들어와 뽑아 든 책이었다. 펼쳐보니 작가는 런던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 속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어 했다. 언뜻 꽤 익숙한 그림들에 눈길과 호기심이 함께 닿았다. 내 생각에 프랑스 오르세나 루브르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그림들이 런던 갤러리에 걸려 있는 게 뜻밖이었다. 가능한 길게 3주까지 이 책을 빌리고 친구의 일이 방해될까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지만 난 봄이야 말로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인 듯싶다. 따뜻한 햇살은 언제든 커피 한 잔을 준비해 책 한 권을 들고 그 햇살 아래로 뛰어들게 한다. 따사로운 햇살을 조명삼아 책을 읽는 기분은 언제나 좋다. 아파트 단지 내 정원도 좋고 좀 더 벗어나 가까운 유원지 잔디밭도 좋다. 펼쳐진 책위로 떨어지는 벚꽃잎들이 간간히 내 독서를 방해하는데 난 이 반가운 손님의 방해가 한껏 즐겁다.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그림 속에 담겨있는 몰랐던 영국 역사에 대해 작가는 꽤 흡입력 있게 자세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뿐만 아니라 갤러리의 위치나 교통편, 요금, 개장시간과 휴관일까지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당장이라도 들러보고 싶은 충동이 일게 했다. 런던의 갤리리들은 코콜드 갤러리를 제외하곤 모두 무료 미술관이란 점이 의외였다. 유일한 개인 소장품 컬렉션 갤러리인 코콜드 갤러리도 5파운드, 우리 돈 9천원이면 관람이 가능하다. 상시 부담 없이 미술관에 들러 명화들을 관람할 수 있다니 마냥 부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림 소개는 다 흥미로웠으나 욕심을 내려놓고 오늘은 우선 그중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개의 작품을 소개할까 한다.
먼저 내 눈에 띄었던 그림은 '제인 그레이의 처형'이란 작품이다. 작가의 눈에도 이 그림을 보는 순간 헉! 하고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난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강한 인상으로 그림에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어떤 사정인 걸까 궁금할 수밖에 없는 처절한 순간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처형 직전의 여인은 순백의 비단 드레스를 입고 청아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궁금증은 더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폴 들라로슈(1797~1856)로 1833년 파리에서 그려진 작품이다. 제인 그레이란 이름도 폴 들라로슈라는 화가도 모두가 생소했다.
이 그림엔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슬픈 역사의 한 순간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영국인들 대부분은 제인 그레이라는 인물과 그림의 사연을 잘 알고 있다고 하니 이 그림을 대하는 마음도 남다를 듯싶다.
이하는 책에서 작가의 해설을 빌어와 추리고 일부는 보태어 쓴 것이다.
제인 그레이(1537~1554)는 영국 왕 헨리 7세의 증손녀이다. 제인 그레이가 살았던 16세기는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 메리 여왕으로 왕위가 이어지던 숨 가쁜 시대였다.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와 여섯 왕비'라는 너무도 유명한 영국사의 숨겨진 조역이었다. 헨리 8세는 앤 불린이라는 어여쁜 시녀와 결혼하기 위해 교황청과 결별(로마 교황청이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 신청을 승인하지 않자 단교를 선언)하고 영국 성공회를 창립해 스스로 수장이 되었다. 하지만 앤 블린은 고대하던 왕자 대신 공주(훗날 메리 1세에 이어 엘리자베스 1세가 됨)를 낳았고 남자 아기는 사산된다. 이 죄목으로 앤 블린은 런던탑에 갇혀 참수(간통죄로 고발하여 처형됨)되었고, 세 번째 왕비로 들어온 제인 시모어(그녀도 케서린 왕비와 앤 블린의 시녀였다)는 헨리 8세가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에드워드 6세)을 낳았으나 출산 후유증으로 열흘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그 후 헨리 8세는 세 번 더 결혼했지만 더 이상 아이를 얻지 못했다. 여섯 명의 여자와 결혼해서 그중 간통한 두 아내(앤 블린과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를 처형시킨 무서운 남자 헨리 8세는 여섯의 아내에게서 겨우 아들 하나 딸 둘을 낳는데 그쳤다. 헨리 8세가 죽고 아들 에드워드가 어린 나이(10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1553년 16세의 나이에 폐질환으로 요절하고 만다. 다음 후계자는 첫 왕비가 낳은 맏딸 메리 공주가 되어야 했으나, 문제는 메리 공주가 그녀의 어머니(케서린 왕비)를 따라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는 점이었다.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를 이어 정권을 잡고 있던 성공회파 귀족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가톨릭 신자인 메리 공주의 왕위 계승을 막고 성공회 신자인 왕족을 왕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당시의 실권자인 노섬벌랜드 공작은 헨리 7세의 증손녀이자 자신의 며느리인 제인 그레이를 급작스레 왕으로 옹립하고, 제인은 귀족들의 음모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노회한 메리 공주는 가톨릭 지지 세력의 군대를 동원해 일종의 쿠데타를 일으켜 여왕의 자리를 빼앗고, 제인은 런던탑에 갇힌다. 제인이 여왕 자리에 머물렀던 기간은 겨우 9일이었다(훗난 9일의 왕비란 별칭을 얻음). 메리는 제인의 5촌 이모뻘로 제인을 동생처럼 예뻐했기에 그녀를 살리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권했으나 이를 거부한 제인은 결국 1554년 2월, 열일곱의 나이에 처형당하고 만다.
이렇게 즉위한 메리 1세는 잉글랜드의 첫 여왕으로서 어머니의 종교였던 로마 가톨릭 종교를 부활시키고, 신교도들을 무참히 처형시켜 '피의 메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제인 그레이는 아름다운 미모에 교양과 학식, 인품을 고루 갖춘 정숙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처형되는 순간에도 그림속의 제인의 모습처럼 여왕의 품위를 지키며 담담하고 고고하게 받아들였다고 전해온다.
폴 들라로슈는 19세기에 주로 역사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파리 아카데미의 교수이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따사로운 봄날에 읽기엔 너무 암울한 스토리이긴 하나, 역사의 희생물로 채 삶을 꽃 피워보지도 못하고 꺾여 버린 이 비운의 여인 제인 그레이를, 난 오늘 5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에 깊히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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