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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 Aug 12. 2021

느린 오리 새끼

K-미운 오리 새끼


1993년 대한민국, 경기도에 위치한 작은 호숫가에 새끼오리들이 태어났다. 어린 생명들이 무릇 그렇듯이 모두 작고 사랑스러웠다. 새끼오리들은 엄마 오리의 사랑 아래 무럭무럭 자라던 중이었는데, 그중 한 마리의 헤엄 속도가 유독 느렸다. 빠른 헤엄 속도를 자랑하던 엄마 오리는 그 한 마리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느린 헤엄으로는 적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거니와 먹이 또한 다른 오리들이 먼저 채갈게 뻔했기 때문이다.

엄마 오리는 느린 오리 새끼에게 특별훈련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매일같이 느린 오리 새끼만 따로 불러내어 헤엄 연습을 혹독하게 시켰다. 걱정되는 마음만큼 호되게.


“그렇게 느려서 네 입하나 챙길 수 있겠니? 더 빨리 헤엄쳐! 발을 더 빨리 움직여야지!”  


느린 오리 새끼는 엄마 오리가 무서워 눈물을 흘리면서도 자기가 낼 수 있는 힘을 다해 열심히 발장구를 쳐대었다. 그러나 엄마 오리의 성에는 조금도 차지 않았다.

며칠 동안이나 힘겨운 훈련이 계속되자 느린 오리 새끼는 엄마 오리를 피해 도망 다녔다. 엄마 오리가 가까이 다가오면 혹여나 눈에 띄어 느리다고 혼이 날까 늘 날갯죽지와 발목이 경직되었다.  자신의 느린 헤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던 새끼오리였지만 그 후로는 뭘 하든 자신이 느리다는 생각에 모두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혹여 자신이 느려서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마음 졸였다. 아니나 다를까 늘 위축되어있는 느린 오리 새끼를 보고 다른 오리들이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너는 왜 그렇게 느리니? 어휴 답답해”

“너는 왜 그렇게 눈치를 보니?”

“너는 참 소심하구나?”

“너는 정말 이상한 오리로구나?”


느린 오리 새끼는 자신의 발이 너무 미워졌다.


‘내 발은 왜 더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걸까? 나는 너무 나약한 오리야..’


자신의 발이 미웠던 느린 오리 새끼는 자신의 모든 것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느린 오리 새끼는 무리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결국 떨어진 채 길을 잃어버렸다.


‘내가 너무 느려서 이렇게 된 거야, 나는 정말 못났어, 나는 바보야!’


자책과 패배감에 휩싸인 느린 오리 새끼는 정처 없이 물 위를 떠다녔다. 한참을 그렇게 떠다니다 보니 어느새 눈물은 멈추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혼자 남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느린 오리 새끼는 아름다운 세상을 넋을 잃고 감상했다. 하늘은 맑고 산과 들은 푸르렀고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의 울음소리, 참새들의 지저귐 소리가 평화로웠다. 매일같이 가를 헤엄쳤는데도 그제야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느린 오리 새끼는 깨달았다.


‘느린 내 발장구만 의식하느라 하늘이 이렇게 높고 파란지 처음 알았네? 진작 한번 올려다볼걸, 고개만 들면 언제나 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무리에서 떨어진 채 자신만의 속도로 유유히 헤엄을 치던 느린 오리 새끼는 자신의 느린 헤엄 덕분에 아름다운 세상을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느린 오리 새끼는 자신의 느린 속도가 나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여유로움과 세심한 관찰력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느린 오리 새끼에게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는 건너편 호수에서 놀러온 백조야, 무엇을 그렇게 구경하는 거니?”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오리모양 구름을 보고 있었어. 마치 파란 물 위를 떠다니는 내 모습과 닮은 것 같아서”

“너는 감상이 풍부한 아이로구나? 그런데 오리 구름과 닮았다기에는 너무 커다란걸?”

“내가 커다랗다고?”

“그래, 넌 백조잖아 당연히 오리보다 커다랗지”

“무슨 소리야? 나는 오리인데?”

“수면에 비친 너의 모습을 보렴”


백조의 말에 느린 오리 새끼는 물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샌가 커다란 백조가 되어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제야 자신의 헤엄이 왜 그렇게 느렸는지 깨달았다. 자신은 백조였기에 오리보다 더 오래 자라야 했고 오래 자라느라 다른 새끼오리들보다 느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드디어 깨달음을 얻은 백조는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더 넓은 세상을 여행할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 작은 땅덩이에서 미칠듯한 속도감과 높은 행동력을 자랑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 그 역사의 중심에는 빨리빨리의 민족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이토록 대단한 빨리빨리의 민족들 사이에서 느린 발장구를 치느라 허우적대고 있는 느린 오리 새끼들을 위한 글이다.

 나의 엄마는 이야기 속 엄마 오리처럼 사랑하는 새끼를 걱정하느라 바쁜 분이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어릴 때부터 행동이 굼뜬 편이었고 답답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결정하기에도 한나절, 결정한 일을 실행하기에도 한나절. 빠른 판단력과 실행력을 가진 엄마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지..

언젠가부터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차분함과 세심함이 스스로에게 문제점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느림을 의식하느라 조급해졌고 불안해졌다. 나를 답답하다고 생각할까봐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자꾸 위축되었다. 그러자 안 하던 실수가 늘었고 실수가 늘자 자책 또한 늘게 되었다. 그렇게 좌절감에 사로잡혀 살던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한적한 공원을 찾았다. 느린 성격만큼 느린 발걸음으로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걷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나의 속도라고. 느린 속도만큼 차분하고 세심한 나를 잊고 살았다고.

사람은 각자의 강점이 있고 고유의 속도와 방향이 존재한다. 나의 페이스를 잃고 타인의 속도에 나를 욱여넣는 순간 진짜 ‘나’하고는 멀어지게 된다.

물 밑에서 보면 오리도 백조도 부지런히 발장구를 치는 모습은 결국 같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이 다를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성실함은 누구든 같은 것처럼.

그러므로 느린 오리 새끼이자 백조는, 오늘도 느리지만 여유로운 발장구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헤엄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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