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해상도

— 무엇을 보는가 보다, 얼마나 세밀하게 머무는가

by 서히


같은 대상을 보았는데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풍경을 보고,
어떤 사람은 그 안의 미세한 균열을 봅니다.
어떤 사람은 장면 전체를 기억하고,
어떤 사람은 찰나의 떨림을 기억합니다.

이 차이는 타고난 재능이라기보다

시선의 해상도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보통 ‘무엇을 보느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세밀하게 보고 있는가’였습니다.

해상도가 낮을 때, 세계는 너무 빠르게 요약됩니다.
장면은 하나의 정지된 이미지로 정리되고,
복잡한 감정은 단어 하나로 압축됩니다.

그 상태에서는 작업이 쉽게 시작되는 것 같지만,
곧 표면에서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세계는 쉽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색의 경계는 미묘하게 흔들리고,
리듬은 일정하지 않으며,
감정은 한 문장으로 붙잡히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오히려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저는
작업이 생동하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그 혼란의 근처라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시선의 해상도를 높인다는 것은
더 많이 본다는 뜻이 아니라,
멈추는 시간을 늘린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지나치지 않고 충분히 머무는 것,
바로 이해해버리지 않고
한 박자 늦추는 태도입니다.


돌봄 노동의 순간 속에서

저는 자주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업의 흐름은 수시로 끊겼고,
집중은 여러 번 중단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상태가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멈춤 속에서만 보이는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상태,
끊어진 리듬,
쌓이지 못하고 흩어진 감각들.
그것들은 빠르게 지나칠 때는
결코 드러나지 않았던 장면들이었습니다.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세계가 더 또렷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가 더 복잡해진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복잡함 속에서
비로소 작업의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


캔버스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에 형태를 만들기보다
겹쳐 그리고 지우고,
리듬을 끊고 다시 이어보며
감각의 밀도를 조정합니다.
그 과정은 내가 보는 방식 자체를
조형으로 옮기는 일에 가깝습니다.


이 좌표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얼마나 세밀하게 세계에 머물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시선의 해상도를 조금만 높여도,
익숙했던 세계는
전혀 다른 텍스트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좌표 03. 해상도.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세계는 선명해지기보다
더 복잡하고 풍성한 얼굴을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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