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이라는 재료

— 텍스트처럼 세계를 읽고 작업으로 옮기는 법

by 서히

작업을 하다 보면 “세계관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웠던 감정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치 미리 준비된 거대한 이야기나,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일관된 설정이
내 안에 갖춰져 있어야 할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관은 처음부터 갖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언어로 세계를 읽어왔는지가
쌓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모두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만
같은 방식으로 읽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지에 먼저 반응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나 리듬,
혹은 사소한 어긋남에 오래 머뭅니다.
그 반복된 시선의 방향이
나중에 돌아보면
그 사람만의 세계관이 되어 있습니다.


저에게 세계는 하나의 완성된 풍경이라기보다
계속 읽어야 하는 텍스트에 가까웠습니다.
특히 돌봄 노동을 하며 끊임없이 발생하는 소음 속에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돌봄은 계획을 침범하고,
일상의 리듬을 끊고,
무언가를 완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소음이
저를 너무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 소음은 제 삶 전체에 깔린
하나의 기본값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돌봄은 정적인 헌신이기보다,
삶을 계속 중단시키고 흔드는
일종의 역동적인 소음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을 질서보다 소음에 가까운 것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는 돌봄과 피로,
중단과 반복이 함께 섞여 있었고,
저는 그 감각을 붙잡아
나만의 언어로 번역해보고 싶었습니다.


작업은 그 읽기의 연장이었습니다.
세계에서 받아들인 인상들을
곧바로 의미로 정리하기보다
색과 선, 리듬과 중단으로
다시 써 내려가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무언가를 표현한다기보다,
읽은 텍스트를
다른 기호로 옮기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읽느냐보다
무엇에 자꾸 시선이 멈추는가입니다.

지나치지 못하고 돌아보게 되는 장면,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감각들.
그 축적이 작업의 재료가 됩니다.


세계관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그렇게 쌓인 자신만의 읽기의 습관에서 생겨납니다.
그리고 작업은 그 습관을 화면 위에
조심스럽게 옮겨보는 일입니다.


이 좌표는 “나에게 세계는 어떤 텍스트였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무엇을 읽어왔는지,
무엇을 소음처럼 받아들여왔는지.
그 목록을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의 세계관은
형성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좌표 02. 세계관.

세계관은 거창한 설계도가 아니라,
차마 지나치지 못해 멈춰 섰던 시선들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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