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같은 세계를 보면서, 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가

by 서히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지극히 익숙한 풍경이,
다른 사람에게는 못내 불편한 장면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누군가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누군가는 평생 마음에 남을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이 차이는 무엇을 보았느냐보다,
대상을 어떤 프레임 안에서 보았느냐에 더 가깝습니다.

프레임은 대상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틀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배경으로 밀어내는지,
어디까지를 하나의 장면으로 묶어낼지를
조용히 결정합니다.


대개 우리는
자신이 프레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프레임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마치 세계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것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작업을 하며 저는
이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졌는지를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같은 감각을 다루고 있는데도
어떤 날은 화면이 쉽게 닫히고,
어떤 날은 끝없이 열리는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대상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떤 틀 안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느냐에 따라
화면의 가능성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돌봄의 시간을 지나며
저의 프레임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방해라고만 느꼈던 ‘중단’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작업의 고유한 조건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되지 못하는 상태,
계획이 자주 어긋나는 시간들.
그것들을 배제해야 할 요소가 아니라
프레임 안으로 기꺼이 들여놓기 시작했을 때,
화면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프레임을 바꾼다는 것은
대상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대상을 둘러싼 조건을
다시 설정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중심에 두고,
무엇을 가장자리로 밀어낼 것인지,
어디까지를 하나의 장면으로 볼 것인지.
그 선택이 작업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캔버스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면의 중심을 어디에 두는지,
어떤 요소를 끝까지 남기고
어떤 요소를 과감히 밀어내는지에 따라
같은 재료도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됩니다.

프레임은 화면 밖에서 작동하지만,
그 결과는 화면 안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이 좌표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넘어,
“나는 어떤 프레임 안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프레임을 자각하는 순간,
세계는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여러 개의 가능성으로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업은
그중 어떤 틀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조용한 결정의 연속이 됩니다.




좌표 04. 프레임

프레임은 대상을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무엇을 중심에 두고, 무엇을 가장자리로 밀어낼지를
결정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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