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세상을 낯설게 보기 시작하면 곧바로 다음 질문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은
사실 작업에서 가장 불안한 시점이기도 합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오히려 더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작업은 다시 속도를 내고 싶어 집니다.
가능성을 한없이 넓히고,
더 많은 것을 담고,
선택이라는 최종 결정을
자꾸만 뒤로 미루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작업이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는 지점은
대개 그 반대편에서 시작됩니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순간,
그리고 그 선택을 끝까지 지켜내는 순간입니다.
선택은 추가가 아니라 ‘배제’에 가깝습니다.
무언가를 고른다는 것은 그 외의 수많은 가능성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에는 늘 작은 상실감이 따라붙습니다.
“이걸 버려도 될까?”
“혹시 더 좋은 방향이 있지 않을까?”
같은 의구심들이 결정을 망설이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택을 미루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화면이 점점 흐려진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모든 것을 품으려는 화면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선택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지금 이 작업에서 무엇이 중심이어야 하는지,
어디까지를 하나의 세계로 묶을 것인지,
어떤 감각을 끝까지 밀고 갈 것인지에 대한 조용한 결단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번에 잘 고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고를 수 있는 나만의 기준을 갖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외부의 유행이나 막연한 완성도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앞선 좌표들에서 정성껏 만들어진 나만의 감각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장면에서 유독 발걸음이 멈췄는지,
어떤 감각을 쉽게 지나치지 못했는지,
무엇을 낯설게 느꼈는지.
그 반복된 경험이 곧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에디팅은
그 기준을 화면 위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과정입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고,
어느 지점에서 멈출 것인가.
편집이 시작될 때 작업은 비로소
하나의 방향을 갖게 됩니다.
캔버스 위에서 선 하나를 덜어내고,
색의 밀도를 낮추고,
복잡한 리듬을 조금 단순하게 만드는 순간
화면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품기 시작합니다.
선택은 작업을 가두는 일이 아니라,
작업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든 가능성을 붙잡지 않겠다는 용기,
지금의 선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가 쌓일수록
작업은 점점
‘자기만의 언어’를 갖게 됩니다.
이 좌표는
“무엇을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여기까지로 둘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번 달라지겠지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작업은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좌표 06. 에디팅
선택은 가능성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작업이 말할 수 있는 언어를 선명하게 만드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