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

— 익숙한 세계를 다시 발굴하는 방법

by 서히

작업이 막힐 때 우리는 종종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형식,

더 강렬한 자극을 찾아 외부로 시선을 돌립니다.

하지만 새로움에 매달릴수록
작업은 오히려 나로부터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새로움’이 아니라,
내가 너무 잘 안다고 자부했던
‘익숙함’ 쪽을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낯설게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발명하는 일이 아닙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유심히 보지 않게 된 대상과
다시 ‘거리’를 만드는 일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장면 앞에서 점점 더 빨라집니다.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는 속도는 빨라지고
감각은 자동화됩니다.
이때 세계는 편리하게 요약되지만,
동시에 아주 얕아집니다.


아이들의 말을 듣다 보면 이 자동화된 감각이
얼마나 쉽게 깨질 수 있는지 문득 깨닫게 됩니다.
밤하늘의 초승달을 보고
“하늘이 눈을 감고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처럼 말입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보지 않게 된 장면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열어 보입니다.

낯섦은 이처럼 의미를 덧붙이기 전에
감각이 먼저 작동하는 틈에서 생깁니다.
속도를 늦추고,
프레임을 조금 흔들고,
익숙한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다시 놓아보는 일입니다.


매일 비슷한 리듬이 이어지던 돌봄의 시간 속에서
저는 이 낯섦이 아주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늘 같다고 여겼던 장면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밀도로 다가왔고,
늘 같은 중단이
전혀 다른 리듬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 변화는 상황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제가 그 장면과
조금 다른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낯설게 하기는 대상을 바꾸는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관계를 조정하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습니다.
너무 가까워져서 보이지 않던 것을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일,
혹은 늘 멀리 두었던 것을
의도적으로 가까이 가져오는 일입니다.


캔버스 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하던 방식에서
아주 작은 선택 하나만 바꿔도
화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중심에 두던 것을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늘 배경이던 요소를
조심스럽게 앞으로 끌어오는 순간,
익숙했던 화면은
다시 낯선 상태가 됩니다.


이런 낯섦은 아이의 언어에서,
서사의 시간을 전복하는 이야기에서,
익숙한 사물이 엉뚱한 자리에 놓이는 장면에서,
혹은 서로 모순되는 감각이
하나의 문장 안에 붙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법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미를 너무 빨리 이해해 버리는
그 속도를 잠시 늦추는 일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낯섦을 유지하려 애쓰는 노력이 아니라,
낯섦이 발생하는 그 찰나의 지점을
놓치지 않는 예민함입니다.
작업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나는 순간은

대개 그 혼란스러운 낯섦의
근처에 있으니까요.


낯설게 하기는
독창성을 증명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재료를
다시 발굴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새로운 것을 더하지 않아도,
보는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세계는 충분히 달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좌표는
“무엇을 새로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너무 익숙해져서 보지 않게 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으면,
새로움은 의외로 멀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좌표 05. 발굴

낯섦은 새로운 것을 추가할 때가 아니라,
익숙한 것과의 거리를 다시 조정할 때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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