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복 속에서 달라지는 것
감각은 고정된 재능이 아니다.
처음부터 탁월하게 보이거나,
타고나야만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감각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상태라고 느낀다.
같은 것을 여러 번 마주하다 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눈에 들어온다.
선의 미세한 방향, 색의 깊은 밀도,
화면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작은 흔들림들.
그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괄목할 만한 성취처럼 다가오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미세하게,
몸이 먼저 반응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전에는 무심히 지나쳤을 자리에
발걸음이 조금 늦춰지는 식으로.
나는 작업을 하며 ‘감각이 늘었다’는 확신보다
‘감각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더 자주 받는다.
더 잘 보게 되었다기보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는 감각에 가깝다.
어떤 날은 예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다고 느낀다.
선을 긋는 속도가 느려지고,
색을 고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예전 같으면 쉽게 결정했을 일들을
이제는 바로 넘기지 못한다.
그럴 때 나는 내가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각이 다른 층위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빠르게 판단하던 감각에서, 머무르며 살피는 감각으로.
감각은 훈련을 통해 단련되기보다
반복을 통해 조금씩 변형된다.
같은 장면을 다시 보고,
같은 소리를 다시 듣고,
같은 화면 앞에 다시 서는 동안
몸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감각을 키우려 애쓰기보다,
감각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지금 내가 무엇에 더 오래 머무르고 있는지,
어디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는지를 가만히 짚어본다.
감각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가깝다.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계속 조정되고 있는 상태다.
오늘의 작업에서도 나는 특별히 새로운 일을 하지 않았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더 늦게 움직였고,
조금 더 오래 보았을 뿐이다.
그 사소한 차이가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작업을 하며 조용히 확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