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직 결과가 되지 않는 날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정의하며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슬럼프, 실패, 혹은 정체기.
삶의 속도가 타인의 기대나
스스로의 계획보다 느려질 때,
우리는 서둘러 그 시간에 이름을 붙이고
가능한 한 빨리 그곳을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말이 생겨나는 순간,
그 시간은 하나의 고정된 ‘상태’가 된다.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되고,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구간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나는 작업을 하며 이러한 이름 붙이기가
감각을 너무 빨리 닫아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직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충분히 느껴보기도 전에,
성급히 결론부터 내려버리는 것 같아서다.
겉보기에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나날은
분명 ‘좌절’처럼 읽히기 쉽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상태,
혹은 뒷걸음질 치는 시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침묵의 시간은 사실 ‘쓸모없음’이라기보다,
아직 어떤 결과로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
이름 붙이지 않았기에 아직 닫히지 않은 시간,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기에 모든 감각이 열려 있는 상태.
작업실에서도 나는 비슷한 순간을 수시로 만난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는 날,
선이 나아가지 못하고
화면 앞에 오래 서 있기만 하는 시간들.
그때의 나를 슬럼프나 정체기라는
단어 속에 가두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부르기 전에
조금 더 오래 그 막막함 속에 머물러 보려 한다.
지금 이 감각이 정말로 막힌 것인지,
아니면 아직 어떤 형태로도 정제되지 않은 채
내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 조금 더 지켜보기 위해서다.
이름 붙지 않은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감각이 방향을 정하기 전,
여러 가능성을 품고 유영하는 시간이다.
아직 말이 되지 않았고,
아직 결과가 되지 않았기에,
무엇으로도 고정되지 않은 상태.
나는 이제 그 시간을 서둘러 통과하려 하지 않는다.
설명하기 전에,
평가하기 전에,
‘이건 실패야’라고 말하기 전에, 조금 더 머물러 본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채로.
그 지체되는 시간들이
사실은 나를 멈추게 한 것이 아니라,
나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빚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나는 그 가능성을
이제 기꺼이 나의 캔버스 위에 남겨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