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리듬을 듣는 일

- 어긋남 속에서 계속되는 작업

by 서히

작업을 하다 보면 나는 종종 나만의 리듬에 깊이 침잠해 있다고 느낀다.
손의 속도, 멈추는 타이밍, 화면 앞에 머무는 시간.

그 모든 것은 오직 내 몸의 감각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실 문을 나서는 순간,

나는 곧바로 수많은 타인의 리듬 속으로 들어선다.


사람마다 움직이는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말을 꺼내는 템포, 침묵을 견디는 길이, 하루를 통과하는 방식까지.

어떤 리듬은 성급히 앞서가고, 어떤 리듬은 유난히 느릿하다.

우리는 종종 그 차이를 불편해한다.

박자가 맞지 않는다고 느끼며,

서둘러 상대의 리듬을 조율하거나 내 리듬을 억지로 꺾기도 한다.

예전에는 타인의 리듬을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곧 ‘맞추는 일’이라 생각했다.
속도를 조정하고 간격을 좁혀 가능한 한 비슷해지는 것.

하지만 작업을 지속할수록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타인의 리듬을 듣는다는 것은

반드시 나의 리듬을 포기하거나 희생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작업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여러 요소가 한 화면에 놓일 때,

그것들이 모두 같은 박자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

어떤 선은 날카롭게 앞서가고, 어떤 색은 한 박자 늦게 뒤따라온다.

중요한 것은 모두를 하나의 리듬으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고유한 간격을 무너뜨리지 않는 일이다.

타인의 리듬을 듣는 일은, 말보다 먼저 감각을 열어두는 일에 가깝다.

지금 이 사람이 어떤 속도로 하루를 건너고 있는지,

어디쯤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지.

섣불리 이해하려 들기보다 먼저 느끼는 일.

판단에 앞서 잠시 귀를 기울이는 태도다.

물론 타인의 리듬이 늘 편안하게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어떤 리듬은 나를 재촉해 불안하게 만들고,

어떤 리듬은 답답할 정도로 나를 붙잡는다.

그럴 때 나는 억지로 타인의 박자에 동기화되려 하기보다,

그 리듬이 나의 화면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가만히 살핀다.

불편함 역시 하나의 분명한 감각이며,

그것 또한 귀 기울여야 할 중요한 신호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리듬을 듣는 일은 결국,

세계가 나의 박자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어긋남과 불협화음 속에서도

작업은 충분히 계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여러 리듬 사이에 서 있었다.
내 손의 속도와 창밖에서 들려오는 생활의 소음,

그리고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분주한 하루.

그 리듬들이 완전히 하나로 포개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로를 밀어내지도 않았다.

나는 그 사이에서 나의 선을 하나 긋고, 다시 멈춘다.

타인의 리듬을 해치지 않으면서 나의 리듬 또한 잃지 않는 위치를 찾기 위해서.

어쩌면 이 미세한 균형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작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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