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되지 않는 날들의 작업

- 어긋난 채로 남겨두는 시간

by 서히

어떤 날은 모든 것이 조금씩 어긋나 있다.

선은 의도보다 앞서 나가고, 색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겉돌며,

손은 자꾸만 멈춰 선다. 화면 안의 요소들이 서로를 향해 흐르지 못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 보이는 날이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날을 ‘조율에 실패한 날’이라 불렀을 것이다.
리듬이 맞지 않았고, 밀도가 흐트러졌으며, 집중이 흐려진 날.

무엇인가를 제대로 해내지 못한 상태라고 쉽게 단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업을 오래 이어오면서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하게 되었다.
정말 조율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 조율의 방식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일까.


어수선한 화면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처음에는 산만해 보이던 선들 사이에 묘한 긴장이 생긴다.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지만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은 상태.

어긋난 채로 버티고 있는 그 간격이 화면을 붙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조율되지 않는 날의 작업은 불안을 동반한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하나의 중심으로 힘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 나는 내가 지나치게 ‘완결된 화음’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음악에서도 모든 음이 완벽히 맞물릴 필요는 없다.
때로는 불협이 긴장을 만들고, 그 긴장이 다음 움직임을 가능하게 한다.

작업 역시 그렇다.

모든 요소가 한 방향으로 수렴하지 않아도,

그 어긋남 자체가 하나의 상태로 남을 수 있다.

나는 이제 조율되지 않는 날을 서둘러 고치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중심을 만들거나 화면을 정리하기 위해 선을 더하지 않는다.

대신 그 어긋남이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 조금 더 지켜본다.

지금의 화면이 무너지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균형을 찾고 있는지.


오늘의 작업은 완성에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완전히 붕괴된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중간 어딘가에서,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상태를 그대로 둔다.
조율되지 않은 채로.

어쩌면 작업은 언제나 매끄러운 합주가 아니라,

서로 다른 박자들이 잠시 공존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사이에서, 오늘도 하나의 선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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